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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8. 2022

당신 인생의 Scene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좁고 협조한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시나리오를 배운 적이 있다.     


여러 각도가 모여 하나의 장면을 나타내는 씬(Scene), 

여러 가지 씬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단락을 표현하는 시퀀스(Sequence),

시퀀스가 모여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영화의 러닝타임마다 나올 수 있는 씬의 개수는 제한적이다.

러닝타임이 60분이면 씬이 55~75개가 들어가고 70분이면 씬이 65~90개가 들어간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라도 각 씬 안에 어떠한 장면을 배치하느냐가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도 누군가의 관점에서 어떤 장면을 넣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여린 마음에 하나의 장면마다 민감하게 굴었다.

상대방의 냉랭한 반응에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클로즈업하고,

나 홀로 맥락에 맞지 않은 상상의 씬들을 넣어 억지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때때로 상대방의 인생 스토리에 감독관을 자처한 나는,

상대방이 나열한 인생의 장면들을 편집해서

로맨스 장르가 치정 멜로로,

낭만적인 우정을 지리멸렬한 복수극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어느 날,

내가 상대방을 볼 수 있는 건, 

영화처럼,

상대방의 인생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 몇 개의 씬의 불과하다는 걸,

극본을 쓰면서 깨달았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예민하게 굴 때,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살갑게 굴 때,

가끔은 낯설었던 누군가와의 장면은,

그저 내가 누군가의 하나의 씬을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나 홀로 점프컷(Jump Cut)*을 해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부로 추측한 것이 아닌지, 

하나의 씬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한 사람의 본질, 삶,

누군가의 인생의 이야기는 시나리오에 맞춰서 잘 찍어가고 있는데,

대사 하나 없는 엑스트라 3인 나의 참견은 영화에 훼방을 놓는 것일 뿐…,     

그저 누군가의 인생의 영화의 관객으로서 추측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의 영화를 한없이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고민하는 씬은 시퀀스 사이마다 배경씬이다.

때로는 풍경 씬, 아침이 밝았다는 씬, 빌딩 사이에 씬, 바쁜 현대사회 씬, 도시를 수놓는 야경씬, 그곳을 비추는 달빛 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하나의 장면이 된다면,

그 사람이 쉬었다 갈 수 있는 배경씬이 되고 싶다.     



*점프 컷 (Jump cut) 장면 안에서 숏의 연결을 말하며, 실제의 연속적인 시간이 생략을 통해 연결이 끊긴 듯한 인상을 준다.

[출처] 영화 연출론-용어해설|작성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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