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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Mar 13. 2020

작은 아씨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루이자 메이 올컷


어렸을 때부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나 내 또래 여자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여자아이들이 커서 어떤 여자 어른이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나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그래서 사촌 언니를 졸졸 따라다녔고, 엄마 친구 딸의 미니홈피를 몰래 구경하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 <작은 아씨들>은 실로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물론 커가면서, 내가 볼 수 있는 TV 속 여자들이 늘어가면서 <작은 아씨들>이라는 작품은 점점 잊혀져갔지만...
 
<작은 아씨들>이라는 작품을 떠올릴 때, 다른 이들이 갖는 기대감은 어느 정도일지가 궁금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작은 아씨들>의 리메이크에 별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해 전 그레타 거윅이 <작은 아씨들>을 새로이 연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심지어 ‘조’ 역은 시얼샤 로넌이 맡는다고... 수많은 각색과 논의가 오갔던 <작은 아씨들>에서 이제 얼마나 더 멋진 작품을 뽑아낼 수가 있을까? 당연하게도 의구심이 들었지만 감독과 배우가 그 둘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그레타 거윅은 나 같은 평범하지만 자의식 강하고, 자주 초라해지만 초라해지기 싫어 잠들기 전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라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얼샤 로넌은 그런 여자들의 표정을 가장 잘 짓는 배우다. 그래서 나는 <작은 아씨들>(2019)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몇몇은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 기대보다 안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레타 거윅이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는 한에서 최고의 변화를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은아씨들>은 ‘메그’의 결혼, ‘로리’와 ‘에이미’의 결혼, 그리고 ‘조 마치’가 쓴 책 ‘작은 아씨들’의 결말. 이 모든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고서도 미래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가능케 했다.
 
영화의 말미에 ‘조’는 자신이 쓴 소설 ‘작은 아씨들’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향한다. 중년의 편집장은 ‘조’의 원고를 읽고는 한마디 한다. "결말로 여자 주인공을 결혼시키시오. 아님 죽이거나."
그 시대에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엔딩은 필히 결혼이어야만 했다. 어찌 보면 모욕과도 같은 편집장의 충고를 들은 ‘조’는 자신의 작가적 커리어를 위해 망설임 없이 소설의 결말에 결혼이라는 설정을 추가한다. 이는 앞서 영화에 여러 차례 언급된 '결혼은 경제적 거래'라는 ‘조’의 신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지점이다. 그리고 ‘조’는 그렇게 해서 얻어낸 돈으로 학교를 세우고, 자매들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원작의 설정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최적의 변화를 이끌어낸 영리한 결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아씨들>(2019)가 결혼을 회의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우리 모두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모든 과정들을 진부하지 않게 그린다. 이 모든 게 시대극이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다. <작은 아씨들>(2019)에서 나의 최애 ‘조 마치’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캐릭터였다. 나는 또 한 번 시얼샤 로넌을 넘치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눈길이 간 것은 ‘베스’였다. 베스. ‘베스’의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아는 ‘베스’는 자매들 중 몸이 약하고 말 수가 적은 캐릭터였다. ‘베스’는 작 중에서 유일하게 일찍이 죽음을 맞는 설정의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나의 기억에 남는 건 ‘조’ 다음으로 ‘베스’였다. ‘베스’는 훌륭한 피아노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매들의 글과 연기와 재능을 좋아하며 존중한다. ‘베스’는 부끄러움이 많지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땐 숨을 헐떡이도록 뛰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상기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베스’는 자매 모두가 귀찮아 딴청을 부릴 때 혼자라도 가서 아픈 이웃을 돕곤 한다. ‘베스’가 저렇게나 올곧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던가?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처럼 이번 영화를 보면서 새로이 주목하게 된 것들이 많다. 다 네 자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그들 각자의 인생을 담으려 한 그레타 거윅의 고민이 잘 드러나는 순간들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조’와 ‘베스’의 두드러진 관계성 또한 인상적이었다. ‘조’는 아픈 ‘베스’의 곁을 지키며 지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고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으며 자매 모두에게 하는 말 같았다. ‘조’와 ‘베스’가 바다를 보러 갔을 때도 ‘조‘는 ’베스‘를 위한 글을 쓰고 그를 위로하지만, 결국 ’베스‘의 품에 안겨 한참을 위로 받는 건 ’조‘였다. ‘마치’ 가(家)의 자매들은 잘 짜여진 격자 같아서 서로를 품고 또 품어진다.
 
 
 
*
 
 
‘메그’가 결혼을 하던 날, "우리의 유년기가 이렇게 끝나가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하던 허망한 ‘조’의 표정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과 7년 전의 유년기 시절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뜻한 색감으로 연출된 유년기 시점에 비하면 푸른 빛이 많이 도는 현재의 모습은 보는 내내 씁쓸하고 모래를 삼킨 것 마냥 목구멍이 깔깔해졌다.
영화를 보며 나도 나의 유년기를 떠올렸다. 나의 삶 역시도 그 때의 그 시절은 끝났으며, 앞으로 남은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들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 번씩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종종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난의 파도에 휩쓸려도 삶을 똑바로 마주하려, 그리고 살아가려 하는 <작은아씨들>의 여자들이 떠오를 것 같다.
 
그레타 거윅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하다. 또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를 할지, 또 그 들은 얼마나 나와 같은 고민들을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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