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호 May 30. 2021

인스타그램 출근





아홉 시에 아침을 먹고 작업실에 출근해서 하는 일은 비슷하다. 일단 들고 온 저녁 도시락을 냉장고에 넣고(나는 점심을 먹지 않는다), 커피를 내린다. 넘쳐 흐르기 직전까지 얼음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자아, 보자” 하고 기합을 넣으며 인스타그램을 들어간다.

고백건대, 월화수목금토일 똑같다. 서울숲역에 내릴 때 커플들이 많으면 아아, 주말이구나, 할 뿐이다.



이렇게 하루 시작부터 인스타그램을 찬찬히 훑어보는 것에 대의는 없다. 그저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

멋지다! 말도 안 돼! 정말? 어쩜 그래! 하고 감탄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손으로 턱을 괸 건방진 포즈로 건방진 생각들을 한다. ‘대놓고 공감을 바라는 대화는 피곤한걸’, ‘세상에는 똑똑하고 재미없는 사람도 많구나' 하면서. 눈꼴 시린 피해의식이다. 삶이 단조롭다 보면 괜히 아니꼬워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또 느끼는 게 있다면, 참 열심히 부지런하게 사는(혹은 놀러 다니는) 사람이 많다.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사진 잘 찍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 피드를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여행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결국, 아니꼬운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역시 인생은 꼭 한 번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자극을 받게 된다.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숨기려고 남의 에너지를 얕잡아 본 게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졸렬한 인간이 되면 안될 것 같다. 다행히 천성이 어디 써먹을 데 없을 정도로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그런고로 반성하는 의미로 나도 글을 올리기로 했다. ‘프리랜서에게 개인 에스엔에스는 무엇보다 중요한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지’, 같은 말을 하고 다니면서 정작 나는 마지막 올린 글이 2월 2일 날짜다. 이런 근무 태만이 있나 싶다.


그렇지만 에스엔에스에 글을 쓰는 게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나 같이 소심한 부류에게는 더욱 그렇다. 책에 쓰는 글이야 써 놓고 일주일 뒤에 다시 보고, 한 달 뒤에 보고, 새벽에도 봐 보고 하면서 최종적으로 오케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엔에스에 올릴 글은 많이 고민해봤자 하루 반나절뿐이라,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 내가 이랬단 말이지?’ 하며 부끄러워 얼굴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러니 만약 내가 매일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너무도 끔찍할 것 같다. 그보다는 거대 지네의 수하가 되어 출근 때마다 한 켤레 한 켤레 신발을 신겨주는 게 나을 정도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낫겠지만. 아무래도 게으른 걸까?



그리고 말인데, 나도 인스타그램에 많은 추억을 남겨 두었지만, 이것들이 실제의 사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내가 올린 (꽤 멋진) 여행 사진들만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지는 마시길.

정말 진심으로 의미 없다. 살면서 내가 이루고 성취한 것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지우고 싶은 실수와 자만, 허영과 잘못의 기억이 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당연히 여기에 전시해 두지 않았다. 대부분 비슷하지 않으려나?


어쨌건 석 달 만에 글을 올리려니 겸연쩍은 느낌이 든다. 누가 앞에 있었다면 고개를 쓱 돌렸을 것이다. 인사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안녕하시렵니까? 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으음, 이 정도면 됐겠지.



사진 – 나미비아 데드블레이
 

작가의 이전글 화산 폭발하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