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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2024년이 초보 상담자에게 가르쳐준 것

by 두솔

몇 년 전 썼던 한 편의 시가 있다. 제목은 <당신은 책이 아니니 안심하세요.>이다.

당신은 책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뒷모습을 보여도 괜찮습니다.
가격이 적힌 바코드가 있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책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끝까지 읽혀도 괜찮습니다.
뒷 이야기가 쓰여 또 손이 갈 테니까요.


몇 년이 지나 이 시가 나의 삶에 다시 떠올랐다. 2024년은 끊임없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너는 완성되지 않았어. 그래서 괜찮아.”라고.


처음으로 상담자로서 내담자들을 만난 해였다. 그들의 치유를 위해 나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의 삶과 맞닿아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럴 때 내가 나에게 틈을 벌려줬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은 나를 치유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내가 나를 용서할수록, 다른 사람의 과정을 용서하게 된다.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의 미완을 진심으로 용서할 때 내 앞에 선 내담자분들께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의 삶이 힘들고 버거울지라도, 이 모습도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애써 쌓아 온 하나의 성이겠지요.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우리는 책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안도를 주는지 모른다. 뒷모습에 가격표가 적혀 있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끝까지 읽혔을지언정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쓰이지 않는 게 아니다. 내일이 있다. 다음이 있다. 매 순간은 새로운 출발선이 된다.


나와 당신이 책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기억해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의 미완성을 끊임없이 함께 용서해주고 싶다. 뒷모습을 보여도 괜찮다고, 이게 끝이 아니라고 함께 안도하고 싶다. 끊임없이 부족한 나를 용서하면서.




[마음실험기 : 초보 심리상담사의 기쁨과 슬픔]

초보 심리상담사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어요.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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