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껏 여려도 되는 이유

그림책 앞에서 만난 나의 원래 모습

by 두솔

심리 검사 결과지로 궁금한 점을 함께 파악해보는 상담을 해석상담이라고 한다. 며칠 뒤 슈퍼바이저 선생님께 나의 검사 결과지로 해석 상담을 받기로 했다. 해석 상담을 앞두고 선생님께서 이번 해석 상담에서 알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메일을 적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저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싶어요."


저는 집요하게 이성적일 때도 있고, 남들의 걱정을 살 정도로 감성적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주장이 뚜렷하지만 절대 남을 거스르진 않아요. MZ 같이 관습을 벗어나려 하면서도 엄청난 예의범절 안에 갇혀있기도 해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싫어해요. 선생님. 저는 왜 이런 걸까요? 무엇이 저의 진짜 모습일까요?


의문스러운 메일을 던지듯 전송하고 이번 주말 참여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집단 상담에 다녀왔다. 그림책을 활용하는 그림책 집단 상담이었다.


15시간의 집단 상담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책 한 장,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동화책을 출판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나는 잊고 있었던 순수한 감각 안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냈다.


그림책은 나의 말랑하고 연약한 마음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단순하고 맑은 그림, 그 안에 은은히 담긴 철학적인 질문들. 마치 넓은 바다 앞에서 파도 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아무 옷을 입지 않은 나를 만났다. 원래의 나였다. 감수성이 넘쳐 그림자만 봐도 마음이 일렁이는 나. 세상의 작은 바람도 매워 눈물이 나던 나. 한번 좋아한 사람을 배신할 수 없는 나.


아직 해석 상담을 받진 않았지만 메일에 적었던 질문에 대해 답을 어느 정도 들은 것 같다. 여린 마음을 가지고서는 매일 울며 지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으니 갑옷으로 꽁꽁 싸매고 살아가는 내가 보였다. 크고 무거운 갑옷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사람.


매서운 세상을 여린 잎으로는 살 순 없었다. 세상이 무서운 만큼 양면성을 발달 시켰던 것 같다. 더 이성적으로, 더 철저하게 나를 숨기고 키웠다. 갑옷은 나를 지켜주는데 꽤 쓸모가 있었기에 내 몸과 붙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내가 진짜 나를 다시 만난 곳은 여리고 여린 그림 책 페이지 앞에서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게 연약함의 존재 이유구나. 사람들이 원래의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내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 마음 놓고 여려도 되는 게 아닐까. 비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저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을 듣더라도. 세상이 매워 매일 마음을 짓이겨 잡아야 하더라도. 마음껏 그림책이 되어도 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회복시켜주는 종이 장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원래 모습대로 펼쳐져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실험기 : 초보 심리상담사의 기쁨과 슬픔]

초보 심리상담사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어요.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