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82, 포르투갈 포르토
드디어 유라시아 횡단 마지막 국가,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물론 차를 선적하러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목적지로 정해두었던 호카곶이 이곳에 있다. 북쪽에 위치한 이곳 포르토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소도시를 한두 개 둘러보고 호카곶으로 향할 예정. 정말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7개월간 여행을 하며 방문한 도시가 몇 개쯤 될까. 글에 담지 않은 도시들, 도시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작은 마을들, 구글맵의 좌표로만 남아있는 캠핑지까지 따지면 수십 개는 족히 될 테다. 자동차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의 자유로움이다. 기차나 비행기, 버스를 통했다면 가기 어려운 작은 근교 도시들을 마음껏 방문할 수 있고, 경로 상에 있는 곳이라면 즉흥적으로 들러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도시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묵고 떠나는 일이 대부분이고, 길어봐야 3~4일을 머물지 않게 된다. 매일매일 다른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뜨는 생활을 몇 개월째 하고 있다.
국경을 넘고 나면, 미묘하게 달라진 교통신호와 다른 언어로 쓰인 표지판을 마주친다. 주유하고 결제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익숙하지 않은 타국의 도로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한국이었다면 별게 아니었을 가벼운 접촉 사고도 이곳에선 상당히 머리 아픈 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비좁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허름한 건물로 들어간다. 비싼 호텔이라면 좋을 테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이 정도도 사치다. 낯선 방, 낡은 가구, 작동하지 않는 히터. 후각에 얕게 스며드는 곰팡이 냄새. 미지근한 물로, 운이 나쁘면 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로 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눕는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데운다. 침대에 누워 내일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헤아리다, 만나게 될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다가 잠에 든다.
매일이 바뀌는 일상. 조금 적응할 때쯤 다시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익숙해질 틈은 없다. 대신 세계의 낯섦에, 그 익숙하지 않음 자체에 익숙해지고 있다. 정처 없이 떠돌던 유목민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정주민은 공간을 길들인다. 유목민은 여러 공간을 넘나드는 스스로를 길들인다. 그럼으로써 정주민이 세계 안에 담길 때, 유목민은 자신 속에 세계를 담는다.
포르토에 간다면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있었다. <비긴 어게인>에서 버스킹을 했던 광장.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 봤던 TV 속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앉아 그때 그 음악을 듣는다. 그때는 머물러 있어도 불안했으나 지금은 이리저리 떠다녀도 평온하다. 차분하다. 금세 찬바람이 땅거미를 품고 왔다. 잔디밭에 앉아 밤거리를 구경할 수 있는 바를 찾았다. 포르토에서 유명하다는 포트와인을 주문했는데, 너무 달콤한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뭐 별 상관은 없으니까. 춥지 않은 겨울밤의 기분 좋은 공기를 맡으며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이내 다시 나의 낡고 낯선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