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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pr 29. 2024

열혈여아 만화가 현정아, 자전거타고 오이도 갈까?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현정에게

전국의 여고생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완벽한 미를 갖춘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면?

전국을 주먹으로 평정하려던 명성고 짱 강하지.

저승사자의 실수로 연약함의 대명사인 아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다!!


키 168Cm 몸무게 47Kg!!

여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절대 신성미가 아람이야.

강하지, 넌 봉 잡은 거야!!

그런데… 어디로 간 거야?

뭐?

내 근육들은 어디로 사라졌냐구?!!

- 만화 <열혈여아> 출판사 소개글




열혈여아 현정아 안녕?


네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만화 <열혈여아>로 너를 부른다. 알라딘 책 소개 글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보았어. 요 정도로 24권짜리 시리즈를 어찌 다 말하겠냐만, 혈기왕성한 현정이랑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어서 말이야. e북으로 나도 몇 편 읽다 보니 너를 열혈여아라 불러보고 싶어졌어. <열혈 여아>는 완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어. 주먹세계 열혈남아 말고 걸 크러시 열혈여아, 이 중년 아줌마에게 소개해줘서 고마워. 


열혈여아 강하지는 남자 못지않은 힘과 운동신경으로 명성 고의 '짱', '도베르만'이란 일진 모임을 이끌지. 무서울 것 없는 하지가 안타깝게도 자전거 사고를 당하고, 저승사자 모야의 실수로 영혼이 한아람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네? 아람은 미모와 우수한 성적, 그리고 기품까지 가졌지만 약하고 행복하지 않은 아이. 아람의 몸과 하지의 영혼이 뭉쳤으니, 이거야 말로 걸 커리시가 아니고 뭐겠니.




아람은 짝사랑하는 신우한테마저 혐오와 왕따를 당해. 그런데 거칠 것 없는 열혈여아 하지의 영혼이 아람의 몸에 왔으니 새로운 삶을 살게 돼. 아람이 감당하지 못하던 어려움을 이젠 단순무식 쾌활하게 극복해 버려.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고만 있지 않아. 강하게 맞서는 아람을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니. 신우도 아람에게서 다른 기운을 감지하게 되고 차츰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


 양산형 판타지 소설 형식에 영혼이 바뀌는 설정까지, 뻔해 보이면서도 공감할 포인트가 참 많구나. 순정 만화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한 내 편견이 부끄러워졌어. 통속적인 이야기의 맛이 이런 거로구나 했어. 너와 십 대 소녀들이 열광하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여자는 강하면 안 되니? 외모만 이쁘고 내면은 야리야리해야 매력적인 여자니? 그게 아니란 걸 판타지 열혈여아가 보여주고 있었어.




열혈여아 현정아! 

우리 자전거 타고 오이도 갈까?


2013년 겨울 방학 첫날 새벽이 와락 생각나. 가족들이 곤히 자는 새벽 5시, 너는 자는 언니를 깨우지 않으려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미리 챙겨 놓은 옷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더구나. 아직 어둡고 차가운 겨울 새벽에 친구와 함께 버스로 40분 넘게 달려간 곳은 오이도! 네 표현대로, '불시착한 두 마리의 외계인'이면서, 완전 열혈여아였어! 


아직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서 너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었지. 얼마나 맛있고 짜릿했을까. 친구가 11시에 학원 수업이 있어서, 두어 시간 놀곤 오이도를 떠나대? 누군 그러겠지. “겨우 등대 하나 보고 오려고 꼭두새벽에 거기까지 갔냐?” 그러면 넌 말했겠지. “그러면 왜 안 돼?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뿐이겠니? 너는 그 길로 또 다른 친구네에 가서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풍산개 대박이와 놀았지. 아~~ 혈기 넘치는 아름다운 일상이여~~



오이도 이야기 조금만 더 할까? 이름 참 이쁘지? 나도 오이도 좋아해. 원래 옥구도(鈺玖島)와 옥귀도(鈺貴島)라는 두 섬 이름을 묶어서 오질애섬이 됐다가 오이도가 됐대. 한자음을 빌려서 오이(烏耳)라 썼지만 섬의 모습이 까마귀의 귀와 비슷하다는 의미란 건 잘못된 이야기래. 엄밀히 말해 지금은 육지랑 이어져 있어서 섬이 아닌 셈인데 여전히 오이도는 오이도지.


네가 친구와 마지막으로 다녀온 후 오이도가 많이 변한 거 아니 현정아? 2020년에 경기도에서 '오이도 도시어촌 지키기 프로젝트'가 선정돼 20년 묵은 불법 컨테이너 같은 낡은 시설이 싹 정비됐어. 어업인 공동작업장과 어구 보관장 설치, 오이도 박물관 내 갯벌체험장 조성, 제방 정비 등 11가지가 새로 단장됐지. 네가 좋아하는 빨강 등대 옆 부대 시설도 전망대 형태로 깨끗이 개축됐어. 현정아~ 자전거 타고 달라진 오이도 보러 가자꾸나~~


만화를 좋아하는 현정아! 


네가 황미리의 <열혈여아>를 한창 읽을 땐 밤새는 줄 모르고 만화를 읽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 읽는 것으로도 그리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넌 직접 만화 작품을 구상했지. 만화 콘티를 짜느라 밤을 새우곤 콘티 노트를 책상 첫 번째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지. 열혈여아의 콘티로 가득한 20여 권의 노트가 널 기다리고 있구나.


 2학년 1반 너의 담임 유니나 선생님을 너는 참 좋아하고 따랐구나. 너도 선생님처럼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 선생님과 함께 일본 여행 가는 꿈을 꾸며 일본어를 참 열심히 공부했지. 너는 그곳에서 유니나 선생님과 일본어로 수다 떨며 별나라 여행을 즐기고 있겠지? 너의 일본어도 나날이 유창해지고 있을 게 틀림없어. 아, 나도 몇 달째 일본어 공부하는 중이야 현정아! 내년 초 일본에 가야 할 일정이 있어서 말이야.


 

보고 싶구나 현정아! 


어느새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도 4월도 지나가는구나. 어느 해보다도 바쁘고 너희 기억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어. 가만히 있지 말자, 함부로 절망하지 말자, 다시 다짐하며 보냈단다. 10주기 기억식을 비롯해 영화, 연극, 전시회, 합창, 책 등 기억하는 예술도 풍성했어. 제8회 전국민주시민 합창축전이 안산 생명안전 공원 부지에서 열렸단다. 12개 합창단이 저마다 ‘세월호 우리의 기억’이란 주제로 노래했어. 나는 416합창단으로 노래하는 4월이었어.


현정아! 올해도 엄마들은 꽃마중 전시회를 했구나. '너희를 담은 시간'이란 제목처럼 별이 된 너희를 주인공으로 기억하기 위한 엄마들의 꽃누르미 작품전이란다. 2015년부터 시작해서 2024년 현재 171명이 완성되었다네. 2학년 1반 김현정도 꽃마중으로 만났지. 2017년 말에 엄마가 쓴 편지와 꽃누르미가 어우러진 액자였어. 내 걸음을 멈춰 세운 엄마 글을 조금만 옮겨 볼게. 현정아 보고 싶구나!


엄마가 듣든 말든 학교 갔다 오면 계속 쫑알거리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엄만 모든 게 미안해. 이렇게 예쁜 바람 엄마만 맞아서 미안해. 따스한 햇살 엄마만 받아서 미안해. 좋은 음악 있다고 엄마 귀에 이어폰 꽂아주던 내 딸. 이젠 엄마 혼자 들어서 미안해. 밥도 엄마만 먹어서 미안해. 아침에 깨워서 내 딸 현정이 밥 먹여 줘야 하는데 못해서 미안해. 내 딸 영영 볼 수 없는데 엄만 먹고 자고 이러고 있는 거 미안해. 이젠 내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미안해. 수학여행 갔다 오면 하복 입어야 하니까 교복 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입혀주지 못해 미안해.  -2017년 12월 엄마가 쓴 편지 중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현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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