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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18. 2019

자신이 쓰는 글에 만족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에요.

- 페이 웰던



자신이 쓰는 글에 만족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에요. - 페이 웰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내가 쓴 글에 만족하는 일이 꽤 자주 있다. 눈이 낮고 수준이 낮은 탓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만족하지 못할 글을 날마다 쓰고 있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 왠만하면 잘 썼다고 자신을 칭찬하는 편이다. 그래야 또 쓸 수 있다. 그래야 계속 쓸 수 있다. 그게 또 글앞으로 나를 불러내는 힘이다. 


내가 내 글에 만족할 때면 자주 하는 행동이 있다. 


1. 만족스러운 그 글이 브런치에 올린 글이라면 - 자꾸 읽는다. 맞춤법이나 문장 어색한 것들이 발견되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 브런치앱에 들어가서 글의 안부를 확인한다. 하트를 몇 개 받았는지, 댓글 내용은 어떤 건지, 전체 글 중 통계상 몇 위를 기록하고 있는지 수치와 내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찾아본다. 

2. 만족스러운 그 글이 내가 쓴 책의 본문이라면 - 책과 관련된 사진을 일부러 찍고 무심한 듯 인스타에 올린다.  그래놓고 눈이 빠져라 기대린다, 저 이 부분이 참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 하는 댓글을. 댓글의 노예로 사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고 하루가 참 잘 간다. 

3. 만족스러운 그 글이 노트북 속 원고라면 - 요것을 얼른 이쁘게 빚어 책이든 브런치든 어디든 세상 빛을 보도록 도울 궁리를 한다. 자꾸 고치고 괜히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글을 외울 때도 있다. 

4. 잘 썼다 싶은 문장을 돌돌 잘 굴러가는 만년필로 적당히 까끌한 고급 수첩에 고운 글씨로 적는다. 글씨체가 맘에 들 때까지 계속 쓰다가 맘에 들면 사진으로 남긴다. 심할 땐 인스타에 올리기도 한다. 문장도 좋고 글씨도 좋고 사진도 좋다면서 그 날은 붕 떠 있다. 




내 글이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었는데 낯이 뜨겁게 부끄럽다면 성장했다는 뜻이란다. 1학년 때 일기장을 4학년이 되어 다시 읽을 때의 낯뜨거움과 비슷하다. 이런 경험은 수시로 생기는데 덕분에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감정만으로 쳐져 있기 보다는 성장의 증거라며 뿌듯해하는 쪽을 택한다. 책의 원고가 될 뻔했던 묻혀 있는 글들을 꺼내 읽다보면 이 글이 나의 책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는게 다행스러워진다. 그 정도로 부끄럽고 볼 것 없는 글들인데 그럼에도 내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게 고마워 아무 것도 지우지 않고 꾹꾹 눌러담고 있다. 덕분에 노트북의 용량은 언제나 부족하고 오늘은 또 뭘 지워볼까 하며 폴더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고마운 일이 생기는데 예전에 써두었던 글나부랭이들 중에 제법 괜찮은 글감을 발견하거나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바로 한 꼭지로 턱 넣어도 손색없을 원고 한 편이 통으로 발견되는 경우다. 이런 일은 정말 흔치 않지만 발견되는 경우엔 길에서 만원 짜리를 주운 것 정도의 기분으로 돌변한다. 오만원짜리라면 더 좋았겠지만 딱 만원짜리 정도의 느낌이다, 그만큼 예전의 원고들은 낯설고 초라하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내 원고들은 어떠한가. 글을 쓰기 시작한지 만 3년을 향해간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쓰기를 거른 적이 없고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쓰면서 살아왔으며 시작은 했으나 끝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보다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만큼 열정적으로 썼다. 그렇다고 내 글들에 만족하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여전히 글은 거칠고 중심없이 흔들리고 진한 재미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계속 쓰고 있다. 아무도 쓰라고 한 적 없는 글들을 매일 숙제처럼 꼬박 앉아 쓰고, 또 고치고, 또 읽는다. 글을 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단언컨대 이제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안 쓸 수 없어서'라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제 안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글에 만족하냐 못하냐는 큰 이슈가 아니다. 만족하면 계속 쓸테고 아니라면 그만 쓸텐가, 그게 아니라서 좋다. 만족하지 못할 글 나부랭이들을 붙잡고 눈알과 머리를 팽팽 돌려가면서도 그걸 하지 않으면 더 고통스럽고 더 불안한 사람이 되었다는게 행복하다. 진짜 좀 제대로 글쟁이가 되어가는 듯하여 그게 좋다.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하는 일이 제법 있습니다. -이은경




이은경 Writer

인스타 @lee.eun.kyung.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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