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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Apr 01. 2019

설거지는 내버려 두자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말자


설거지는 내버려 두자.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말자. 

사람들이 해달라고 하는 일을 냉정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다. 

- 린 샤론 슈워츠


이유를 불문하고 설거지는 내버려 두라는 조언은 일단 환영이다. 설거지를 내버려 두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설거지는 일단 거절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몇 가지의 결정적인 한 방이 있었는데 그 중 최고였다고 생각되는 건 아파트 1층 생활이다. 왜 1층인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나는 아들둘의 엄마니까.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습하고 답답하고 어두운 1층집이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밝고 맑게 자랐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때가 많다. 그렇게 위로하지 않으면 속이 쓰릴 법도 한 것이 1층인 덕분에 감수해야할 것들도 참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맘편안하게 잘 자란 것은 이해가 간다고 하자, 1층인 것이 글 쓰는 사람이 된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1층에 살고 있는 엄마는 아이가 해달라고 혹은 같이 하자고 요구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을 거절해도 괜찮다. 왠만한 일은 '너가 해'라는 말로 자립심, 독립심을 키워주는 척하면서 내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예를 들면 다른 집 아이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나가 놀고 와'라며 쿨하게 보내줄 수 있었고,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자전거를 갖고 나가서 타고 오라고 해도 괜찮았다. 자전거로 단지를 뱅뱅 도는 아이들을 옆으로 고개만 돌리면 베란다 창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탁에 앉아 꼼짝하지 않은 채로 '그래, 갖다 와'라는 허락과 '잘 놀고 왔어?'라는 확인을 반복하며 보낸 짧은 몇 년의 시간 덕분이었다.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얻는게 있으면 잃는것도 많다. 놀이터를 따라 다니며 물티슈와 얼음물을 챙겨 주지 않은 무심한 어미 덕분에 지저분한 손으로 이것저것 집어먹다 배탈이 나는 일이 잦았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달려오는 엄마가 없어 피 흐르는 다리를 절뚝이며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아이구'만 외치기도 했다. 아이를 더 살뜰히 챙기고 부족함없이 뒷바라지하기 위한 시간을 줄이자는 다짐이 흔들리는 순간들은 그렇게 자주 닥쳤다. 잘 하고 있는걸까, 이래도 되는걸까. 엄마라는 주된 업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쓰는 글들이 내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우리 가정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흔들렸다. 노름을 하고 다니거나 드라마에 빠지거나 춤바람이 나서 댄스장에 다니느라 정신이 나간 건 아니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달래며 아이들은 그래도 어찌어찌 잘 커갈거라고 믿으며 버티어왔다. 


그렇게 보낸 이년여의 시간, 작가로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지는 못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원없이 자유시간을 주면서까지 열심히 쓴 글들임에도 참 많이 거칠고 불안하다. 그런데, 꽤 괜찮은 일이 생겼다. 내가 시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 만큼, 간신히 지켜낸 시간을 글을 쓰며 보냈던 그 시간들 만큼 아이들은 훌쩍 많이 성장했다. 설거지를 돕고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고 학교숙제를 거뜬히 끝냈다. 둘이서 문구사에 가, 준비물을 골라 오기도 하고 마감이 임박한 날 던지듯 선사한 용돈으로 동네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씩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서너시간을 훌쩍 책에 빠졌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엄마가 바빠 보이면 알아서 둘이 몸싸움을 하다말고 양치질을 하고는 잠이 들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을 식탁 의자에 앉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던 엄마는 미안한과 죄책감에 마음이 안 좋았지만 식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지 못한 아이들의 책가방은 때로 참 황폐하고 쓸쓸해 보였지만, 그렇게 한 번씩 준비물을 빼먹고 등교했던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다. 더 이상 엄마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이 알고 움직인다.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일도 하면서 언제 글을 쓰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실은, 아이는 자기들이 알아서 크고 있고, 살림은 마구 황폐해졌으며, 일도 하긴 하지만 엉망이며, 이 모든 덕분에 글 몇 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초라하다는 대답은 하지 못하겠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 노력했지만 되지 않더라. 

설거지는 내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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