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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Apr 01. 2019

완성하라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 "완성하라" - 피터 메일

완성하라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 "완성하라" - 피터 메일


피터 메일 뿐 아니라 나 역시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을 꼽으라면 한 가지, '완성하라'이다.


사실 난, 자주 열심히 수시로 때마다 해마다 월마다 주마다 야심차고 한결같이 힘찬 시작을 하지만 열에 아홉은 마무리하지 못하는, 마무리까지 차마 닿지 못하는 의지 박약의 사람이다. 학창 시절 매일 붙들고 지내던 수학 문제집은 앞에서부터 5분의 1 지점 정도까지는 너덜너덜 시커멓기까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끝까지 다 푼 문제집은 거의 없었다. 금방 지루해지고 싫증이 나고 표지가 삼삼한 다른 문제집으로 갈아타기 일쑤였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 끈기부족. 그렇게 끈기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권이나 되는 분량의 책을 썼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같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 적어보는 의지박약 여성의 책쓰기 성공기.




약한 의지와 금방 싫증내는 성향은 글쓰기에서도 금새 티가 났다. 제목 한 번 멋들어지고 목차도 그런대로 잘 짜여진 원고의 기획안이 지금 노트북 안에 얼핏 세어봐도 다섯 가지가 넘는다. 이걸 제 때 완성했었다면 난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닐거라 장담한다.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완성하지 않았던 탓에 난 여전히 뭔가 좀 아쉬운 작가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들을 완성하는 것이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꿀 것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그것들을 완성하기가 돌덩이처럼 부담스럽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자 희망이다.


첫 책의 원고를 더듬더듬 만들어가던 시절로 돌아가보겠다. 경쟁 도서, 유사 도서라는 기본 개념도 모른 채 쓰고 있는 원고와 딱 비슷한 책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하거나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그 책은 열어보면 안되는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멀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한 풋풋한 시절의 에피소드이지만 그 때 그게 아니었다면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 얼굴이 좀 이상했다. 이유를 알지 못할 피부질환으로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뒤집어졌고 고름이 줄줄 흘러 그게 너무 가렵고 쓰라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얼굴로 어디도 나갈 수가 없었다. 꼭 가야하는 곳에만 마스크를 쓰고 갔는데, 그도 다 가려지지 않아 이마와 턱의 벌건 피부는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 얼굴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 꼴로 하루 종일 집에 틀여박혀 글을 썼다. 누구를 만날 수도 커피 한 잔 하러 동네를 나갈 수도 없으니 집에 콕 박혀 울며 겨자먹기로 원고를 꾸역꾸역 완성했다. 도대체 어디쯤이 완성인지 알 수 없는 깜깜한 심정으로 썼고, 다행히 원고를 완성하고 계약서를 쓰러 나가던 즈음에는 두꺼운 화장으로 가릴 수는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의지 약한 내가 한 권의 분량을 완성하게 된 건 단언컨대 그 때 그 피부질환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내 약해진 의지로 약속을 잡아 나가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헬스장의 방송댄스로 바쁘게 보냈을 터인데 그도저도 하지 못하게 된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완성이란 것을 맛보고 나니 내가 조금 달라졌다. 어쩌다 주말에 낮잠을 곤히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으려고 하면 평소와 다른 개운하고 상쾌하고 색다른 컨디션이 느껴지는데, 첫 원고를 완성하여 책을 손에 잡은 이후의 느낌이 꼭 그랬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백쪽짜리 원고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을 듯한 배짱이 생겼다. 그렇게 엉겁결에 어설프게 완성한 내 원고가, 내 책들이 맘에 들었느냐, 그건 아니다. 책이 나오고 나면 후회와 아쉬움에 며칠 간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 없게 맘에 안 드는 구석들이 발견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했음이, 완성하여 미약하게나마 초라하게나마 책이라는 모습을 가진 어떤 것으로 만나게 되었음이 다행스러워 그게 정말 감사하여 단잠을 청한다. 글이 책이 된 것을 완성이라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뭐 이런 걸 책으로 담았어 라는 말이 불쑥 나오게 만드는 형편없다고 하는 부류의 것이나, 도대체 이건 무슨 정신으로 교정을 한거야 싶게 틀린 맞춤법과 비문이 종종 눈에 띄는 성의없는 것들도 책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걸 나도 안다. 마찬가지로 내가 책이랍시고 온 정성을 다해 열심히 적어낸 글들도 누군가에게는 형편없는 글 나부랭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어떤 것을 완성했다는 것, 완성하여 이름을 달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노트북 속에 잠자고 있는 원고 파일들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쓰기가 힘들다면,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한다.

완성하라.

책 한 권이든, 글 한 편이든, 편지 한 장이든, 냉장고에 붙일 메모 쪽지 한 장이라도 좋으니 쓰기로 맘먹은 무언가는 꼭 완성하라. 쓰기 시작했다면, 기필코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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