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은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내라"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훌륭한 작가와 예술가 중에는 작품 활동을 하는 내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어찌 안 그럴 수 있을까? 예술에는 본질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때로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낼 필요가 있다. - 다이앤 애커먼
현실은 늘 좀 서글프다.
'드라마 같다'라는 말은 사실, 현실과 좀 다르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저런 장면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심지어 조연이나 단역조차도 비현실적인 외모와 옷차림인 걸 보고 있으면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평범한 시민을 위축시키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싶다. 그래서 위로가 되는 건 '인간극장' 같은 리얼다큐일 때가 많다.
나의 현실은 어떠한가.
호기롭게 그만둔 직장이 슬금슬금 그리워진다. 상사욕을 하며 함께 먹던 과자들이 그립고, 숨만 쉬어도 꼬박 입금되던 월급이 애타고, 아침이면 찍어바르고 출근하던 시절이 살살 핑크빛으로 추억되려 한다. 다행히 책 몇 권 쓰고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서글프다. 사람들은 나의 일상에 관해 막연한 추측을 하며 환상과 부러움을 갖기도 하지만 실상을 알면 정말 서로 더 서글퍼지기 때문에 참겠다. 이틀 째 못 감은 머리를 틀어올리고 어느 시골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 한 권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노트북만 네 시간째 바라보고 있다. 처리하지 못한, 혹은 처리해야할 나의 일들이 노트북 안에 소복한 눈처럼 쌓여 있다. 도중에 두 번 - 부동산에서 한 번, 인터넷 바꾸라는 업체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오지 않았다면 그나마 한 번도 꼼짝을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1층 어린이 열람실에 있는 아이들이 오늘 왠일로 나를 찾아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인데 아마도 엄마의 눈을 피해 만화책을 낄낄거리거나 만화 영화를 틀어달라고 하여 신나게 보는 중인 것 같다. 아이들은 가장 사랑하는 친엄마를 가장 피해다니고 싶어한다. 이게 내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미술,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과 통하는 면이 많다. 이전에 몰랐던 작곡가, 가수, 화가, 웹툰 작가들이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라는게 조금씩 와닿는데, 내 경우엔 고통보다는 '창작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온전히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평가를 받게 되는 순간의 떨림. 책이 출간되면 묵직한 택배가 집으로 온다. 계약 사항에 따라 20권일 때도, 10권일 때도 있는데 묵직하게 쌓여있는 새 책 더미를 온가족이 둘러앉아 한 권씩 펼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보통 떨리는게 아니다. 언제나 내 편이고 늘 잘했다고 응원해주는 유일한 세 사람이지만 그들의 평가에 떨린다. 원고를 계약하고 돌아올 때면 온갖 세상 잘난척을 다 하지만 이렇게 책이 집 안으로 들어와 가족의 손에 닿는 순간만큼은 참 많이 부끄럽다. 혼자 있을 때 책을 받은 후에 어디든 감추어 둘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 만큼.
창작한다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평가받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다. 물론, 쓴 글을 언제까지나 한글 파일로 저장해놓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거나 내가 그린 그림을 혼자 지내는 작업실에만 두고 평생을 지낸다면 다른 얘기. 하지만 누군가에게 읽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떠한 평가도, 비판도, 칭찬도, 감사도 받겠다는 뜻이다. 그게 싫으면 글이 책이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댓글, 후기, 서평 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음 상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누구도 이 글이 반드시 책이 되어야 한다고 권유한 적이 없다. 작가의 결정이고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꾸며내는 연습을 한다. 나도 잘 안다. 내 책의 어느 부분은 형편없이 쓸데없는 내용이며, 혹 또 어떤 책은 책 전체가 엉망이라는 혹평도 받았으며,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별로다 싶기도 하고, 이건 도대체 왜 구입하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책의 저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겸손이나 자기비판이 아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내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이대로 슬쩍 접어야 마땅하다. 그럴만큼의 혹평도 제법 들었다. 서점의 중앙매대를 차지하고 씩씩하게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스스로 초라해지는 기분을 어찌 할 수가 없는데 그럴 땐 또 슬그머리 검색용 PC에 가서 내 책들의 제목을 검색해본다. 재고가 없단다, 재고가 없다는건 잘 팔려서 그런걸거야. 라며 씁쓸한 기운을 지우려고 애를 애를 쓴다.
잘 팔리는 책들은 마케팅의 힘, 자본의 힘이라고 넘어가줄 수 있다. (서점의 매대는 자본주의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매대 이용권을 서점 측에 결재하면 그 곳에 책을 눕혀 주는 시스템이다.) 결정적으로 초라해지는 순간은 사지 않고 못 배기게 만드는 '참 잘 쓴 글'이다. 몇 장 후루륵 넘기다 서서 차분히 읽다가 허리가 아파 의자를 찾는다. 속독으로 읽어치우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사들고 나오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 책이 부러워 견딜 수가 없는데 그렇지 못한 책을 쓴 사람이 느끼는 참담한 시기질투는 서점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서점 나들이가 우울해지고 나자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굳은 결심을 했다. 서점이 싫고 겁나고 성질 나는 공간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자신감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절대 쉽지 않다. 자신감은 꾸민다고 퐁퐁 솟아나는 종류의 감정이 아닌지라 오랜 시간의 훈련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것이라는 결심, 나의 새로운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위로, 지지해주는 지인들과 새로운 독자들. 어떤 것도 단숨에 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감이 충만해졌냐고? 아직은 아니다. 자신감을 꾸미는 일상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쓰고 있으며 잘 쓰지 못해도 꾸준히 쓰고 있음에의 충만한 기분으로 자신감을 꾸며나가는 중이다.
일단, 이거면 됐다.
이은경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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