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정보가 많이 쌓이면 내 행동에 대한 예측과 통제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민 상황이 없다는 것도 아니죠.
삶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돈을 잃거나, 이별을 경험하거나, 화가 나거나, 힘에 부치는 일들을 헤쳐나가야 하거나.
경험을 통한 도전과 배움의 순간은 끝없이 옵니다.
혼란이 많을 때 개인의 무의식은 더욱 힘이 세 집니다. 평정심, 이성적 제어의 힘이 풀어지는 순간, 잘 참다가도 언제든 누적된 긴장이 터질 수 있습니다.
잠시라도 여유가 있다면, 내 마음을 수시로 들여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짐 다지고 가는 듯한 피곤함에 불합리함을 외치고, 마치 세상의 구할 것 같은 정의감이 불탔었던 젊은 시절도 지나갑니다. 이제 세상과 타협할만하고 일도 손에 익어 여유가 생깁니다. 잠시 그런가 했더니, 팀원이 생기거나 더 넓은 범위의 일을 맡게 됩니다. 회사는 틈을 주지 않네요.
승진하고 연봉도 조금 올랐습니다. 근데, 기쁨과 함께 혼란이 찾아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상사들은 다 왜 저 모양이냐며 혀를 끌끌 찼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앉아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릅니다. 한 3차 방정식쯤 생각하던 것이 5차 6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성향과 견해가 다른 팀원들과의 소통이 큰 고민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 답답하기만 한데 회사에서는 자꾸 개별 면담을 하라고 합니다. 팀을 잘 리드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조바심에 문제를 여기저기 얘기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평가하는 상사 하나만 보면 됐었는데, 이제 좌우위아래. 사방에서 비공식적인 평가가 들어옵니다. 목표 달성 책임도 커집니다. 일은 느는데 챙기고 소통해야 할 팀도 늘어납니다. 들어가는 회의가 많아지고, 대체 내 업무의 범위의 한계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운 것도 한순간이고, 그냥 달립니다. 계속 달립니다. 나를 달리게 채찍질하는 것은 이제 상사 한 명이 아닌 전방위입니다.
관계, 업무, 코칭... 그냥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해결하며 가다가 '아- 내가 지금 정신이 없구나.'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 하는 자각도 한 1년은 되어야 옵니다. 행여, 그 사이 팀 내 관계나 업무에 무슨 문제라도 닥치면, 정신은 더 안드로메다로 가죠. 사정없이 맞거나 거칠게 대항해 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엉망인 것만 같습니다.
이제, 내 마음은 돌본다는 것은 그저 사치스럽고 먼 소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