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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iis Jul 16. 2021

0002. 후기의 후기

판교에서의 풋풋했던 HR 인턴 시절을 회상하며

2020.09.18 _ 2달간의 인턴을 마치며, 짤막한 후기


오늘로 2달 간의 인턴십 과정을 마무리했다.
정들었던 판교 오피스도 이제 안녕.
다음 주부터는 길고 길었던 1시간 40분의 출근길에서 벗어난 행복감을 만끽할 예정이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조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시원섭섭함보다 찝찝한 기분이 남는건 왜일까.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결과물들
배움 없이 혼자 부딪혀야 했던 시간들
변두리에서 지내는 듯 묘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들까지.


올해 남은 시간 동안은 조금 쉬엄쉬엄 가보려고 한다.
어쩌다보니 작년 여름부터 쉴새없이 학생-인턴 생활을 반복하며 지내왔다.
그러기엔 하반기 원서도 벌써 두 개 제출한 상황이지만...
이번 주말이라도 잠깐의 휴식 동안 그간 쌓인 피로를 조금 풀어낼 생각이다.


누군가 내게 "인턴십을 통해서 많이 성장했나요?"라고 물으면 Yes.
허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는지 물어본다면 대답은 당연히 No.
근육을 키우기 위해선 찢어진 근섬유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달렸다는 느낌.
성장보다는 소모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면 한 명의 직장인으로, 인간으로 성숙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걸 싫어하고 잘하는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2020년 7월, 나는 판교 크래프톤타워에서 인턴으로 첫 대기업 생활을 경험했다. 우와 이 거대한게 회사 건물이야, 우와 회사 안에서 커피팔고 과자 나눠주는게 복지야 그러고 다녔던 순진무구했던 시절.


생각해보니 쉬엄쉬엄 하반기를 보내겠다는 다짐도 잠시, 퇴사하고 2달이 안되어서 입사가 결정되었다. 지금 직장에서의 인턴생활은 완전 다른 느낌이었으며, 학교수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꿴 워라밸은 쭉 지속되었고 어느덧 평생 안가던 병원 선생님과도 안면을 튼 사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저때 느꼈던 찝찝한 감정들은, 지금의 나를 저 자리로 보내더라도 마찬가지로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실무 pm이 된 지금도 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며 일하고 있진 못한다. 때로는 현실(시간)에 타협해야 했고, 배울 곳은 오히려 아예 없어져서 스스로 습득한 것이 회사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만 이전처럼 변두리를 떠도는 이방인의 느낌은 없기에, 내가 이 집단에 소속되어서 구성원들과 융화되고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받고 있기에 이전보다 나을 것 없는 환경에서도 마음은 훨씬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단기간의 몰입을 통해 저때보다 성숙해졌다. 지난 8개월의 시간을 통해 업무적으로도 나의 강점과 약점을 구분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업무에 몰입할수록 부작용이 생겨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색깔은 무엇인지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지는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무채색이라느니, 로봇같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어진 시간동안 필요한 일에 온 힘을 쏟았던 것밖에 없다.


그런 말들을 마냥 흘려들은 건 아니었고, 결국 일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글로 돌아왔다. 이런 날들을 대비해서 글을 남겨 왔고, 다시 남기게되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회사는 나의 비전을 찾아주는 곳이 아니다. 그건 어른이 된 나의 의무이다. 개인이 넓은 우주에서 온전한 책임과 권리를 모두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나 자신 뿐인 것이다.


당분간은 이전까지의 글, 사건들을 회고하는 후기를 많이 남기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보는 나의 옛 모습들.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며 떠오르는 당시의 감정과 고민들. 이런 것들에 대해 더 무던해지고 담담해진 지금의 시선으로 남기는 글들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조그마한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어느 순간부턴가 남는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는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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