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의 목적과 독자를 고려해서 비용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라.
(여기서의 비용은 작성과 해석에 들어가는 시간적, 인지적 리소스를 포괄한다.)
글을 쓰기 전에 주제와 구조를 미리 잡아두고 불필요한 내용을 제거하라.
한 문단에는 하나의 내용만을 담아라.
문장에 들어가는 표현에는 사족을 빼고,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포멀한 단어를 사용해라.
최근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이력서 컨설팅을 받았는데, HR에서 채용을 4년 넘게 했지만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그녀는 소위 말하는 'T' 성향이 높은 인간이다)으로 무수한 피드백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주된 의견인즉슨 불필요한 말이 너무 길고 상대가 원치 않는 정보를 줘서 피로감이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이력서는 H 그룹사의 평가를 통과했던 것으로, 문항 당 요구하는 글자수가 500자를 넘지 않으니 불필요한 내용을 빼고 팩트 기반으로 잘 서술되었다는 평이었다. (이것이 올해 22번째 작성한 나의 가장 최근 공채 이력서였고, 결과는 3번째 인적성 탈락이었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시간과 인지적 리소스는 금이고, 귀하신 직장인들은 글을 읽기 몹시 귀찮다. 그래서 독자의 상황과 배경지식을 고려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면에 내세운 후 그럴듯한 논리(내 입장에서 이해되는 걸 넘어 그들이 봤을 때 납득 가능한 수준의 근거들, 예컨대 숫자나 구체적인 상황맥락의 표현을 말한다)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대학에서 인문계를 복수 전공하고 '글 잘쓰는 법', '보고 잘하는 법' 글과 영상을 무수히 찾아 본 뒤 사내 글쓰기, 커뮤니케이션 교육까지 만들어 보며 얻게 된 일종의 공식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감성적인 글쓰기나 카피라이팅의 영역이 따로 있지만, 비즈니스 관계에선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 내 팀장으로부터 나대지 말고 안전하게 가자는 얘기를 듣고 싶진 않았다.
가끔은 내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는게, 결과에 영향 받는 주요 이해당사자가 '나'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이상한 고집에 꽂혀 기행을 한다. 나이 서른에 어쩌면 마지막일수도 있는 공채 지원에서 직장의 부품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을 때 얼만큼 먹히는지 보고 싶었다. (대기업 공채는 내게 묘한 감정을 들게 만든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정말로 하고 싶진 않지만 명예와 돈에 대한 복합적인 갈증, 그리고 거부당한 자가 느끼는 갈망을 포함하여 도전하고는 싶지만 간절하지 않은 그 무언가랄까.) 스펙과 일경험의 메리트를 씹어먹고 22개의 서류 중 5개의 합격과 전체 인적성, 면접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 냉정한 피드백을 받았지만 크게 속상하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그 회사들만큼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경력직 포지션에서는 통하는 바가 있단걸 확인했고, 내가 대기업에 가지 못한다고 남한테 피해주는게 전혀 없지 않은가. 물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보다 컴팩트한,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 글쓰기가 낫긴 하다. (여담이지만 채용 담당자는 한 포지션에 대해 비슷한 수준의 글을 수천개씩 본다. 그들이 본업이라 말하는 다른 업무들과 병행하면서 말이다. 시간을 아껴 최대한 빠르게 기준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거쳐야하니 때문에, 사려깊게 작성해둔 질문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자기 얘기만 늘어두는 대부분의 신입 지원서들에 대해서 짜증이 올라와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선택과 무관하게 늘 서로의 입장 차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상상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 상황에서 타인으로부터 비난 받지 않을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직장에 다닐 때, 학교에 다닐 때 사회인으로서 나의 글쓰기에는 위에 작성한 원칙들을 꽤나 열심히 준용하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많이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와 협업하는 사람들의 평가도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하지만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쓰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글들은 블로그나 카페, 그리고 여기 브런치에 생각나는대로 구구절절 적어내려가 퇴고도 거치지 않고 발행 버튼을 눌러버린 그 무언가들이다.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명예나 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목적도 없는 그저 취미와 개인기록으로서의 글쓰기지만 어쩌다 누군가의 호감과 반응을 얻는 날이면 꽤나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곤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간결한 글쓰기에 대한 노력과 연습을 멈출 순 없다. 그러나 나다운 글, 나다운 문체를 지속적으로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인간의 사고는 물길과도 같아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문체를 유지하며 스위치 하나 눌렀을 때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 스타일은 한 쪽의 연습을 지속했을 때 다른 한 쪽이 크게 무뎌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국 절충안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만연체와 의식의 흐름을 거친 미괄식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최대한 여러가지 표현과 비유와 완급조절을 통해서 읽는 사람(사실은 적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해서 절실히 글을 적을 필요는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나 자신의 필요를 넘어 침략으로부터 변화할 필요가 없는 사적인 공간으로 글쓰기를 남겨두기 위해서, 다른 측면의 수요를 여우처럼 더 갈고 닦으며 살아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