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에서 보여준 집 안의 공간들을 생각해 보면 영태와 미주의 5번의 손짓의 의미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전작과 비교해 볼 때 집은 조금 더 커졌고, 행복한 삶을 위해 두 사람은 집 안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영태가 하는 일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 작보다 더 다양해진 것으로도 보인다. 여전히 카메라는 집안에 오래 머무르긴 하지만 확장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다양한 외부인과 만난다. 세상에는 미주의 초음파 사진에 감탄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채업자나 갑질 손님처럼 여전히 그들을 힘겹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들에 감독은 장르적 요소들을 재치 있게 덧붙인다. 낯선 여자의 꿈을 꾸고, 문 넘어 사채업자의 대화를 듣거나 가위에 눌리는 장면은 표현의 방법을 얼마나 더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는 손가락이 닿는 그 어떤 지점에서도 영화적 혹은 장르적 시도가 가능하다.
전작에서 영태와 정희는 카메라의 위치를 바탕으로 여러 각도에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번에는 물리적으로 더 커진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르적 표현을 기발하게 구현해 낸다. 전 작처럼 여전히 두 사람이 기거하는 집에서 화면의 극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서 어쩌다 맞닥뜨리게 된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는 소재들이 서스펜스와 공포를 만들어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장르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장면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영화의 형식처럼 재기발랄하다. 게다가 결말은 실제 부부답게 에로틱한 마무리를 짓는다. 사채의 공포를 직접 경험한 정희 혹은 미주를 대신해 이번 영화에서는 영태마저 직접 사채업자를 만나는 것을 보면 이들을 정말 부부인가 보다. 그래서 멜로라는 장르를 빼버렸는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두 사람의 다소 격렬한 눈싸움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설경 속에서 겨울나무를 두드리는 딱따구리의 귀여운 소리는 두 남녀의 정겨운 멜로를 대신한다.
전작의 유쾌한 조연들도 역시 더욱 확장된 역할을 보여준다. 흡사 구도를 하듯 묵언으로 모든 연기를 하는 미주의 동생과 여전히 집안을 들락거리는 사채업자는 때로는 공포스럽고 때로는 판타지로 더 넓어진 집안을 채운다. 사채업자 여사장은 미주에게는 여전히 저승사자와 같다. 하지만 그녀는 사채라는 공포의 손길에서 동생을 구해내며 또 다른 장르인 실패한 영웅의 서사도 만들어 낸다. 게다가 인적이 드문 어둡고 외진 곳으로 이끄는 갑질 손님 역시 영태의 노동을 납치하는 유괴범이 되어 스릴러마저 시도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그들의 집 안팎에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의 요소를 과감하게 시도한다. 독립영화가 되든 혹은 예술영화가 되든 간에 그들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이렇듯 확장된 영화는 그들의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만들고 있다. 비록 영태의 설명이 많아지긴 했지만 다음 영화에서 또 어떤 변화를 보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