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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북스 Channel Books Jun 06. 2022

[메트로폴리스] 7장 상업과 교역의 심장 _ 리스본

( + 믈라카, 테노치티틀란, 암스테르담) : 1492년 ~ 1666년



메트로폴리스


지난번 독일의 뤼벡을 지나 이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왔다. 시대는 15세기에서 17세기로 빠르게 근대로 접근 중이다. 사실 오늘의 도시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도시는 아닐지 모른다. 리스본이나 암스테르담은 이름은 들어본 도시일 것이고, 반면 테노치티틀란이나 믈라카는 확실히 좀 낯선 도시이다.

오늘 소개할 도시들의 중심에는 리스본이 있다. 지리적인 중심이 아니라 리스본으로부터 크고 작게 영향을 받은 도시라고 해야 할 듯하다.


© z0man, 출처 Pixabay



리스본



포르투갈의 도시 리스본은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1500년 경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12개의 대도시들 중 7개는 아시아에 있었다. 유럽에는 유일하게 파리가 인구 18.5만의 기독교 기반 대도시였다.


리스본은 이전까지 유럽의 변두리 도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와 동남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가 개척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룬다. 기본적으로 무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방식은 대포와 총칼로 무장한 위협이었다. 거의 깡패가 자릿세를 받는 방식과 동일하게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위협하고 안되면 정복하고 약탈했다. 해적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 LauraRinke, 출처 Pixabay




믈라카



이 과정에서 무너진 도시 중 하나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믈라카였다. 믈라카는 가장 위대한 도시국가이자 인도양의 보물이며, 태양의 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도시였다. 인구 12만의 대도시 믈라카에는 84개의 언어가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번영의 도시에 약 900명의 유럽인들이 무력으로 진입해 2만 명의 현지 병력을 격파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든다. 물론 약탈이 감행된다. 리스본의 믈라카 함락을 시점으로 세계 도시들의 흥망성쇠가 변하기 시작한다.



© essuera, 출처 Pixabay



테노치티틀란



리스본의 믈라카 정복과 비슷한 방식으로 스페인의 테노치티틀란 정복이 진행된다. 훗날 멕시코의 전신인 아즈텍 제국의 테노치티틀란은 당시 유럽 최대 도시인 파리가 18.5만이던 때에 인구 20만의 대도시였다.



450여 명의 스페인 군인들이 다녀가고 퍼진 천연두로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한다. 이후 무기를 보강해 돌아온 유럽인들에게 테노치티틀란은 75일을 버티고 굴복한다. 이 폐허가 된 도시위에 유럽식으로 다시 세워진 도시가 지금의 '멕시코시티'다.



© bvldom, 출처 Unsplash



암스테르담 _ 금융




암스테르담의 발전은 리스본의 유대인 탄압에서 시작된다. 1492년 리스본은 수천 명의 유대인 난민들을 받아들이지만 5년 후 기독교로의 개종 혹은 도시를 떠나도록 강요했다. 150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스본의 시민들은 유대인들을 화형 시키고 처형하기에 이른다. 이때 능력과 인맥과 부를 가진 유대인들이 이주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다.


암스테르담은 1450년 당시 습지에 위치한 인구 4000명의 촌락에 불과했다. 유대인들의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1570년 3만 명, 1620년 8.8만 명, 1640년에는 인구 14만 명에 가까운 대도시로 발돋움한다.



© iulian_ursache, 출처 Pixabay


암스테르담이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역시 개방성이다. 이 책 메트로폴리스를 읽다보니 모든 도시의 발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요소다, 개방성. 활짝 여는 도시는 발전하고 흥하지만 배척하거나 규제하고 탄압하면 도시가 쇠락한다. 공식처럼 정확하다. 이렇게 개방적이 되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지식인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은 당시 북유럽 출판계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금융



암스테르담이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금융이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판 대금으로 설립되어 결국 포르투갈이 장악한 믈라카도 빼앗게 된다.



1609년 설립된 암스테르담 외환은행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수표 체계, 자동이체, 계좌 간 이체 여러 가지 은행업 방식을 고안했다. 1600년대 초반이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지 얼마 후 광해군이 즉위하던 시점이다. 금융 쪽으로 비교해 보자면 1678년 우리나라에 상평통보가 발행되니 수표와 자동이체를 이미 사용하던 암스테르담의 금융은 얼마나 앞선 이야기란 말인가.


© nick604, 출처 Unsplash



이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노릇인데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증권 시장이 이 즈음 암스테르담에 생긴다.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를 통해 증권 거래, 선도와 선물, 특권부 매매, 주식매수선택권, 공매수, 공매도 같은 금융기법이 급속도로 발달한다. 세상에.... 지금 들어도 정확히 이해가 안되는 개념들이다.

특히 현대의 선물거래와 같은 개념으로 직접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거래가 가능했다. 청어나 곡물, 향신료 갖은 물건뿐 아니라 불어오는 바람이나 내가 마신 공기를 팔아도 무방했다고 한다. 도대체 금융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앞서 있었던 건지.... 같은 지구에서 일어난 일인가 싶을 정도다.

암스테르담은 금융뿐만 아니라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도시의 시작이 된다. 이렇게 세련된 대중문화와 소비의 도시는 뒤에 런던과 같은 도시로 연결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 andreacau, 출처 Unsplash



그래서 다음에 방문할 도시는 런던이다!! 8장 카페인 공동체와 사교 _ 런던에서 19세기까지 올라와 보자.


그럼 그때까지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책책책 책을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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