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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북스 Channel Books Nov 27. 2022

[독후감] 파리대왕 _ 윌리엄 제랄드 골딩

남자 초딩들끼리 무인도에 남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rakosasurya, 출처 Unsplash




그런 책이 있다. 분명히 제목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책이 있다. 아니면 분명히 익숙한 이름인데 그것이 영화인지 애니메이션인지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제목의 문학이 있다. 나에게는 이 [파리대왕]이 그랬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어본 제목인데 왜인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책 중 하나였다. 그러다 드디어 읽게 되었다.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 것 같은 강렬하고 강렬한 이야기다. 평생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문명과 본능



[파리대왕]은 세계에 핵 전쟁이 일어나고 한 무리의 소년을 안전한 곳으로 공수하다가 그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된다. 어린아이들은 대여섯 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열두 살 정도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추락하면서 조종사는 죽게 되고 결국 무인도에는 어른들이 없는 아이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어떤 규제나 어른의 통제 없이 수순하게 아이들만이 만들어 내는 고립된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정말 강렬한 이야기다. 



어른이 없이 아이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어떻게 흘러갈까? 처음에는 제법 문명의 잔재가 남아 있어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소라를 든 사람이 발언권을 갖고, 투표를 통해 대장을 선출하고, 조를 나누어 봉화를 올리고 사냥을 하며 오두막을 짓는다. 종종 이 소설과 비교되고는 하는 [15소년 표류기]나 [산호섬]에서와 같이 협력하고 체계를 이루어 작은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아직은 어렴풋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운 그리고 집에서 부모님들께 배운 문명의 습관들이 남아있다. 


꼬마들은 소라의 소리에는 순종했다. 랠프가 소라를 불었다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랠프는 키가 컸고 따라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와 유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마들이 회합의 재미를 즐겼다는 것도 또 한 가지 이유였다. 
[파리대왕] 중에서


© dylanshaw, 출처 Unsplash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의 통제와 보호 없이 아이들 스스로 생존해 나가면서 문명보다는 인간의 본능과 본성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면 문제가 시작된다. 문명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반목하고 분열하며 대립한다. 자기중심적 본능을 강하게 드러내도 중재하거나 제재할 더 큰 권력이 없어지자 아이들은 동물처럼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지는 동물적 본능이 아이들을 지배하자 이성적 합의 위에 세워진 문명의 힘은 보잘것없는 약속이 되어 버린다. 법도 공권력도 없는 세상에서는 힘센 사람이 권력이고 법이 되어 버린다. 수컷들의 세계에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이성과 문명보다 앞선 고기를 주는 힘센 사람이 위에 서기 시작한다. 



잭은 사냥 부대 쪽으로 향하였다. "그는 사냥꾼이 못돼. 우리에게 고기를 대주지도 못했고 대주려고도 못했을 거야. 그는 반장도 아니고 도대체 그에 관해서 우린 아는 바도 없어. 그는 그저 명령이나 내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저 복종해 주기나 바라고 있어."
[파리대왕] 중에서




그렇게 문명과 이성, 도덕의 끈을 놓아버리자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본능만 남은 아이들은 더 이상 문명인이 아닌 야만인이자 오랑캐이다. 같은 인간이자 사람이 아니라, 내 편이 아니면 죽여서 이겨야 하는 적군일 뿐이다. 어느 순간 이야기는 더 이상 아이들의 모험담이 아닌 인류의 생존사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문명이 배제된 소름 끼치고 잔인한 정글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특히 마지막에 랠프를 모는 장면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자 압권이다. 마지막 장면에 닿을 때까지 숨을 쉴 수 없는 이야기가 굉장히 강렬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수많은 비유들



이 소설 [파리대왕]은 수많은 비유와 은유, 상징들이 사용되어 15소년 표류기 정도의 청소년 모험담을 생각하면 안 되는 심오한 이야기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도 사실은 Lord of the flies 가 아니라 원래는 '곤충의 왕'이라는 표현이었는데, 이 표현은 성경 속에 나오는 악마에 관한 표현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악마성에 관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가, 악한가를 이야기하는 성선설/성악설의 개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인데 문명의 힘으로 교육하여 악한 본능을 누르고 문명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파리대왕]에서도 문명과 이성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적 지도자 랠프와 육체적으로는 약하고 놀림당하지만 이성적으로는 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보좌관 같은 피기(돼지)가 나온다. 


© michael75, 출처 Unsplash




그리고 샘과 에릭 쌍둥이의 모습은 꼭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질감도 느껴지면서 씁쓸하기도 하다. 자신의 주관이 있기도 하지만 위협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는 고민스러운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다. 고기를 주는 사람이 좋고, 어떨 때는 가면 뒤로 숨어버리고 군중 속에 묻혀버리고 싶기도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적당히 휩쓸려 살아가면서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은 부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몇몇 꼬마들이 자기들끼리 원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서로 보충하는 원이 생겨 서로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렇게 되풀이해서 빙글빙글 돌아가면 저절로 안정감이 생긴다는 듯한 투였다. 

<중간 생략>

노랫소리의 가락이 고통스럽게 올라갔다.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이제 공포 속에서 지독하고 절박하고 맹목적인 딴 욕망이 생겼다. 

[파리대왕] 중에서




반면에 인간의 본능적 모습에 충실한 독재자 같은 잭과 같은 지도자도 나온다. 아이들에게 고기를 제공해 줄 수 있고,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과 미지의 존재에게 바치는 제물로 신앙의 개념까지 만들어 낸 원시의 지도자 같은 모습이다. 인간이 현대 문명사회를 이룩하기 전의 모습은 제정일치 사회, 샤머니즘, 부족사회의 추장 같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얼굴엔 피와 흙으로 색을 칠해 가면처럼 얼굴을 가리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 Viscious-Speed, 출처 Pixabay




얼굴을 이렇게 가리는 (masking) 행위는 자신의 자아를 가면 뒤로 숨기는 행위가 되어 아이들은 더욱 난폭하고 잔인한 익명성을 가지게 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인터넷에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되면 더욱 난폭하게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전 세계적 코로나 사태가 오면서 서양에서는 마스크 쓰는 것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저항이 있었는데 이런 문화적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강도나 테러집단이 자신의 정체를 숨길 때나 쓰는 것이라는 정서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면 그 뒤에 숨어 인간은 익명성을 띠고 더 난폭하고 잔인해진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마스크는 이제 하나의 독립한 물체였다. 그 배후로 수치감과 자의식에서 해방된 잭이 숨어 버린 것이었다. 적색, 흑색, 백색으로 채색된 얼굴이 공중에서 요동치며 빌 쪽으로 다가갔다. 

[파리대왕] 중에서




결국 마스크에 대한 저항은 미지의 두려움에 대한 반대라고 볼 수 있다. [파리대왕]에서도 아이들을 지배하는 큰 정서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아이들은 미지의 '짐승'이나 어두움으로부터 공포를 느꼈다. 대여섯 살의 소년들은 울었고, 12살 근처의 소년들은 자신들이 어른 대신의 역할이었기에 차마 울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으면서, 중반 이후로는 극도의 긴장과 스릴러에 가까운 공포스러움도 있다. 인간의 본성적 잔인함이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게 느껴질 때는 정말 소름이 쫙 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마치 랠프가 그랬듯이 맥이 탁 풀리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다 읽고 나면 참 많은 생각이 머리에 남는 여운이 긴 이야기다. 주저하지 마시고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는 명작 고전이다. 


우리 모두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책책책 책을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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