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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l 02. 2024

입시제도의 대안이 궁금하다면

<대치동> (2)




 책 <대치동>은 모든 욕망의 최전선인 대치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생태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입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이 성행하게 되었는지, 입시 제도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지요. 

 사실 대한민국의 입시 열풍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결론짓기엔 제도와 정책, 시장구조, 개인의 욕망, 부의 시스템 등 여러 요소가 다층적으로 얽혀있습니다. 지금까지 교육 정책의 변화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특수한 환경,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속적 욕망을 알지 않고서는 재단하기 쉽지 않지요.


 저자가 대치동 사교육 최일선에서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기록한 이 책은,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입시 과열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포스팅('한국 사교육이 유독 심한 이유는?')을 참조 바라며, 오늘은 책 <대치동>의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학력(능력)주의와 학벌주의]

우리 사회는 신입생과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능력(학력)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이 사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학벌만 한 영향력을 가진 스펙을 만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학벌을 옹호하는 이들은 학벌 이외에 다른 능력주의적 분배 기준을 도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 반면 학벌을 갖지 못한 청년들에게 학벌주의는 공고한 집단적 차별을 만드는 연고주의다. …… 이들은 한 번의 시험 결과로 평생에 걸쳐 낙인을 찍는 학벌주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강하고 합리적인 능력주의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
우리가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경쟁이 초래하는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기 위한 능력주의적 노력은 결국 오작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 인성을 선발 기준으로 삼으면 인성도 평가의 대상이 되므로 평가의 근거가 확인 가능해야 공정성을 갖출 수 있다. …… 능력주의는 모든 것을 평가의 대상으로 환원하여 측정과 계량이 가능한 것으로 변질시킬 것이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능력주의로 고상하게 포장되고 진화된 불평등이 아닌 학벌주의의 노골적인 차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찾아보기 힘드므로 학벌만큼 영향력 있는 스펙이 없다고 말하죠. 

 사실 그동안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NCS 블라인드 채용 등 개인 배경보다 능력과 관련된 활동을 강화하려는 노력인데요. 하지만 이 또한 측정과 계량의 근거가 공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특히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지표를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측정할 것이냐가 관건이지요. 



[입시제도의 미래]

교육의 기회가 가진 돈에 따라서만 분배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부정의에 맞서기 위해 효율성을 억압하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대치동 사람들이 실현한 이 희한한 교육의 효율성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할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입시에만 전념하는 학원보다 더 나은 입시 결과를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즉 학교가 효율적인 입시 학원처럼 된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 학원을 누른다고 학교가 부활할 리 만무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대립 관계에 놓는 것은 학벌주의와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저자는 오히려 대치동의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을 사회에 적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대치동에서 잘 갖춰진 시스템을 공교육에 적용한다면 그만큼의 아웃풋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죠. 공교육과 사교육을 대립각에 놓고 경쟁 체제로 양분화할 것이 아니라, 사교육을 무작정 누를 것이 아니라, 차용할 것은 차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측면은 있지만, 이러한 시각 자체는 신선했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각자 해야 할 역할을 고민하고, 효과적인 방식에 대해 열린 태도로 함께 의견을 교류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미국 주재원으로 살고 있는 지인의 사례를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첼리스트에 재능이 있던 아이를 위해, 학교 측으로부터 좋은 첼리스트를 초빙할 방법을 알아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죠. 사교육의 인프라를 잘 활용한 사례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시 사교육의 풍부한 자원을 공교육으로 유인하여, 사교육을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로 활용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대학 입시는 더 다양해져야 한다. 각 대학의 학과마다 필요한 인재상이 같을리가 없지 않은가. 학문의 영역과 다루는 주제가 다르니 요구하는 소양이나 적성, 능력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대입 논술 전형을 더 확대해야 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입시 전형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전공이나 학교에 따라 요구하는 능력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수능 한 가지에만 빗대어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요. 

 여러 가지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가 관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입시강사 시절, 같은 지식을 전달해도 학생마다 받아들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각자 타고난 강점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공부'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부라는 재능뿐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인정해주고 발휘할 기회를 주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의 열망을 내리찍으면 두더지 같은 열망이 다른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 것이라는 구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의 욕망이 일종의 '학벌주의'로 표출된 것이라는 시각이죠. 사교육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상승하려는 열망의 반증이므로, 그걸 내리찍으면 어떤 식으로든 비뚤어진 열망이 고개를 들 것이라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묻지마 투자 등 '과도한 부에 대한 숭상'도 그 열망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딱 부러진 해결책을 얻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원인을 알게 되니 답답함이 조금 해소된 느낌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심각성을 느끼고 논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차츰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자의 말마따나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들이 모여 사회적 논의의 실마리가 되고,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뀌어가려는 노력들이 이어져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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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서 사교육이 성행하는지 궁금하다면,

학벌주의의 대안이 궁금하다면,


책 <대치동>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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