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역마살로 전국 곳곳과 해외살이도 해봤지만 그럼에도 가장 오래 산 곳은 수도권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계에 몸을 담고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를 해왔기에, 마지막 이사철에는 꼭 서울이 아니어도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살고 싶었다. 1인 가구이지만 넉넉한 공간을 좋아해서 방이 3개가 있고, 아는 사람을 편하게 초대할 수 있는 '단독주택' 형태를 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가까울 것'. 코로나 시즌 맑은 공기를 자유롭게 마시기 힘들었던 부분과 매일 명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깨끗한 자연 속의 명상과 그라운딩은 더할 나위 없는 에너지 충전이기에 나의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가장 효과를 보았던 점을 들어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전국 '단독주택'을 뒤지다가, 거제 단독주택을 검색했을 때 나는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내가 원하는 완벽한 조건의 집이 거제에 있었고 디자인 또한 유니크했다. 또한 이사를 한 해는 거제도를 처음 가게 되어 여러모로 정보도 얻고 '이런 도시가 있다니!' 하며 사랑에 빠진 곳이기도 했다. 한 번에 다 쓰기는 힘들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나는 거제도 이사를 결정했고, 거제 주민이 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상태이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본인의 상품을 만들거나 생산을 할 수 있는 생산자라면 꼭 서울이 아니어도, 오히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의 삶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 생각한다. 수도권을 떠나 거제라는 도시에서 1년을 살아본 거시적 장점은 아래와 같다.
1. 집에 대한 적은 투입 대비 큰 만족감
사실 위에 나열한 원하는 집에 대한 기준은 순수하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를 물어봤을 때 내가 답한 기준이었다. 그런 집을 실제로 찾을 수 있을 거란 또한 내가 실제로 살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는데, 내 기준이 너무 서울에만 있었나 보다. 좀 많이 아래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나는 이 집이 아니면 가고 싶은 다른 집이 없었고, 마침 공교롭게도 거제도의 국토개발 사업과 관광산업의 변화에 대해서 꽤 많이 인포를 얻었던 상태라 나를 믿고 한 번 질러봤다. 그 선택을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실제로 1년을 살아보니 그만한 보상이랄까, 오히려 지역이라서, 거제도라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삶의 한 스토리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라 나는 어느새 거제도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2층 23평의 아치형 구조가 아름다운 집, 거제 도심에 위치하고 터미널 5분, 백화점과 CGV가 바로 앞에 있다. 심지어 앵무새를 키우고 있는데 앵무새 카페도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으니 내게는 200% 맞춤형이 아니었을까. 같은 조건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면 글쎄, 내 집은 '언젠가'가 되었을 것 같다. 게다가 거제의 부동산 상황은 조선업 하락세로 이전 고공행진을 하다가 바닥을 치고 이제 살짝 반등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사를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었기도 하다. 부동산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만나는 사람 중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현지 상황을 공유한다. 물론 이미 아는 사람들은 벌써 다 사놨지만.
2. 청년 유입에 적극적인 지자체, 서울에서 왔다고? 대환영이에요
적은 인풋에 많은 아웃풋을 내는 효율은 미덕이다. 내 포지션은 기획자다, 정확히는 전략기획에 특화되어 있는데 그리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더도 아니건만 운이 좋았던 건지 서울에서 와서 정착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역 내에서의 퍼스널브랜딩이 수월하게 된 것 같다. 덕분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지역 사회에서 그리도 중요한 '인맥'과 '네트워크'가 꽤나 빠르게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이사할 때 시 주최의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던 것이었는데 실은 거제도라는 지역과 관광지에 대한 인포를 얻기 위해 신청한 것이 지역사회의 네트워킹까지 이어져 초기 정착에 꽤 도움이 된 부분이었다.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 1년이 지난 지금은 귀한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아직 거제에서는 이주하는 청년에 대한 지원 정책은 없지만 그런 부분은 곧 생길 예정이며, 거제가 아니어도 다른 청년 소멸 지역에서는 그러한 지원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3. 없는 게 많아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은
처음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여기가 낚시꾼들이 낚시하는 섬?으로 알고 있었다. 해양레저관광도시인 건 와서 알게 되었다. 섬 자체는 제주도의 반 사이즈인데, 해안선이 2배나 되는 신기한 곳. 모래사장과 몽돌해변을 함께 볼 수 있는,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신선대 등 다양한 모습의 바다를 한 도시에서 즐길 수 있다는 신기한 점과 그 외에도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관광산업의 일례로 가볼 만한 숙박시설과 대형카페들이 매년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다만 '문화 컨텐츠'가 약한 비대칭적인 성장으로 관광굿즈나 캐릭터, 앵커 복합문화공간, 전시 공간 이런 것들이 전무했고 최근에야 한 군데씩 생겨나는 와중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거제 지도를 심볼화 한 캐릭터와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했고 곧 소셜살롱과 전시를 열 예정이다.
4. 1일 생활권인 한국, 서울과 섬을 동시에 삽니다.
한국은 1일 생활권이다. KTX나 SRT를 타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 반이면 간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을 가는데 거제는 아직 KTX가 없지만(2027년 준공 예정이다) 김해 공항에서 1시간 비행기를 타면 김포공항에 도착해 있다. 생각보다 김해공항 가는 게 어렵지도 않고 우리 집에서 거제 버스터미널이 5분 거리라는 게 가장 큰 부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총 이동 시간을 다 더하면 2시간 30분-3시간 소요다. 버스 이동이 힘든 사람인 나는 조금 걸려도 이렇게 가는 게 썩 불편하지 않다. 비행기 표도 국내선이라 가장 저렴할 때는 3-5만 원 대, 시간에 따라 8-10만 원대인데 일정을 여러 개 잡고 넉넉히 갔다 오는 편이라 소요시간과 비용은 그리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원래 가진 인프라가 다 서울에 있는데 괜찮아요?"라고 질문하면 글쎄, 딱히 단절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내일 봬요! 식으로는 미팅을 못 잡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야말로 반은 아름다운 집과 자연을 즐기며 살면서 반은 서울의 문화권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지금 내 라이프스타일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5. 이러한 선택지도 있다는 부분, 앞으로 더 다양해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어쩌다 거제도라는 선택을 하게 되어 생각지도 못한 섬&도시 라이프스타일을 살게 되었는데 지금은 이게 매우 생소한 형태일지라도 앞으로는 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인정받고 공공연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몇 년 전 만 해도 재택근무는 일반적인 근무 형태가 아니었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코로나가 우리 삶 전반을 바꾸었듯, 또 어떠한 이슈로 변화가 촉진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이 반영된 라이프스타일이 일반화될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각종 부업과 제테크 노하우가 전에 없이 각광받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국내 여행의 발전을 일으켰고 K-컬쳐에 대한 인기는 곧 외국인 관광 유입으로 이어질 추세다. 또한 전국 로컬씬은 정부에서도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하는 중이다. 꼭 서울이어야 할까? 밀려나서 선택하는 것 말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도시에서, 원하는 집에서, 잘하면서도 수요가 있는 능력을 살려 살아가는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은 특히나 1일 생활권인 한국에서 유효하다고 본다.
아직 생소할 수도 있는 삶의 형태이며 지역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나간다는 숙제를 안고 있는 1년 차이지만 그럼에도 손금만큼이나 다른 개인의 다양한 선택이 자유로울 미래를 믿는다.
2023년 내면 돌봄 / 직관 실행 목표달성 키트 텀블벅 펀딩 중
PRODUCT
1단계: 내면 돌보기
- 모닝페이지 전용 노트
2단계: 명상 가이드 (꽃명상)
3단계: 실행 툴킷 (플래너/PPT)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Kim Ro won
- 거제도 사는 서울 사람 / 경험을 상품화 하는 자유인
거제 에세이 얼룩소 연재 중 - https://alook.so/users/notwwm
Insta - @the.rowon
Facebook - 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