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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쩨리 Oct 08. 2022

넷플릭스 <글리치> 후기 - '글리치'된 메시지

볼만 하지만 딱 그 정도

※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넷플릭스에 <글리치>가 공개됐다. 시놉시스가 흥미로워서 공개되지 마자 바로 봤는데, 좀 아쉬웠다. 그럼 바로 리뷰 고!



제목처럼 '글리치'된 이야기


넷플릭스 <글리치>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마치 오류처럼 존재하는 외계인 목격자, 주인공 홍지효(전여빈).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보는 '환각', 그리고 사라진 남자친구 시국이를 찾으며 성장해 일상으로 돌아오는 성장 스토리인가?


아니면 어릴 적 오해로 멀어진 홍지효(전여빈)와 허보라(나나)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틈을 메꿔가는 우정 성장 스토리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외계인'의 존재를 찾아가고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사이비 종교의 비밀을 파헤치는 사회 고발 스토리인가?


뭔가 알 것 같은데, 만져질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좀... 애매하다. 대학교 다닐 때 너무 어려운 전공서적을 마주한 기분이다. 알 것 같으면서, 이게 맞나? 했다가 또 아닌 것 같고... 여하튼


메시지가 이렇다 보니, 사실 장르적 재미를 추구할만한 부분도 애매하다. 성장 스토리 특유의 감동을 주기에도 부족하고, 사회고발 성격을 띠는 스토리가 줄 수 있는 긴장감도 없으며, SF적 장르가 주는 방대한 우주 스토리의 재미도 없다. 그래서 안 그래도 10화짜리 긴 드라마가 재미까지 없다.




은은하게 구멍 뚫린 빌드업과 개연성

이렇게 메시지가 애매한 경우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드라마 자체가 어려운 드라마 거나, 아니면 어렵다기보다 빌드업을 잘못했거나 하는 것. 사실 대중들이 보는 드라마에서 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구성을 꼼꼼히 짜서 어렵더라도 차근차근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전개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글리치>는 빌드업이 약한 케이스다. 중요한 건 이 약한 빌드업이 <글리치>가 주는 특유의 독립영화 감성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개연성과 빌드업이 잘 못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어려운 드라마처럼 보인다. 대놓고 못 만든 드라마는 정말 구멍이 숭숭 뚫린 게 눈에 보이는데 그런 드라마가 누더기 옷이라면, <글리치>는 마치 매쉬 소재의 옷을 보는 기분.


드라마에 사건은 아주 많이 등장하지만 이 사건들을 연결하는 접착제가 덜 끈끈하다. 조금 노력하면서 봐야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간다. 잘 만든 드라마나 영화는 보통 주인공의 꽁무니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해하고,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데 <글리치>는 그런 면에서 아쉽다. 개연성도 조금 부족하고, 장면들 간 케미도 아쉽다. 많은 사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잘 이해될 수 있게 잘 연결해놔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말 아쉬웠다.


심지어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굳이 홍시국이 실종됐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 홍지효(전여빈)이 최면 장면에서 괴로워했던 이유가 알고 보니 철갑상어 다큐멘터리와 오버랩했단 걸 알고 나면 그냥 허무할 지경이다.


주인공 홍지효(전여빈)과 형사는 마치 러브라인을 탈 것처럼 굴다가 갑자기 맥이 끊겨 버리고, 뭔가 있는 것처럼 그려놓은 홍지효의 친구는 드라마에서 기능적으로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끝이 나 버린다. 실종됐다가 돌아온 이 시국(이동휘)도 뭔가 이 드라마에서 할 것처럼 깔짝거리다 끝난다.


이게 '빌런일 줄 알았는데 끝까지 착한 편이었다'가 아니라 그냥 필요한 장면에 그런 캐릭터들을 장면을 설명하는 장치로만 쓰고 갑자기 캐리턱의 설정을 날려버린다. 이는 아래 내용으로 더 자세히.



너무 아쉬운 조연들의 역할

<글리치>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각 조연마다 캐릭터도 강하며 반드시 그 조연이 해내야 하는 역할도 뚜렷하다. 아니,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글리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이어주고, 연결해줄 조연들이 그저 각 장면에서 설명만 해주고 나면 갑자기 조연이 가지고 있던 미스터리함, 뚜렷한 캐릭터성들이 날아가 버린다.


이 시국(이동휘)은 다시 돌아와서 뭔가 어떤 역할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그냥 돌아온 뒤에는 장면을 설명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면서 끝난다. 외계인 동호회 회원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그렇게 뚜렷한 개성을 넣어놓고 모두 장면을 설명하는 데서 끝난다.


김직진(고창석) 캐릭터도, 그 딸도 그렇다. 이 딸에게 엄청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결국 딸도 하늘빛드림교회에서 홍지효(전여빈)이 잘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조력자, 장면이 진행될 수 있는 기능만 하고 끝이 난다. 성하에 집착하면서 스스럼없이 총을 쏘대던 캐릭터성과 어릴 때 집단 자살 사건을 목격한 스토리는 하늘로 날아가 버렸나?



지나치게 루즈한 전개

결국 이런 단점들이 모두 합쳐져 <글리치>는 10화가 왜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전개가 정말 루즈하다. 그냥 감독이 넣고 싶은 장면을 다 넣고 싶어서 그랬을까? 지지부진한 전개와 지나치게 많은 사건들, 근데 또 설명되지 않은 사건들, 쓸데없는 조연들의 농담 주고받기 등등이 합쳐져 넷플릭스 <글리치>는 지루함의 끝을 달린다.


이건 속도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다. 루즈함은 몰입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다. 속도가 느리다고 루즈한 드라마는 결국 잘못 만든 드라마다. <글리치>는 구멍 뚫린 개연성, 부족한 조연들의 역할을 어쭙잖게 몽환적인 화면으로 넘어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글리치>는 잔잔한 분위기 같지만 뜯어보면 온갖 사건투성이의 드라마이고, 중간중간 환각 같은 장면들을 연출해 잔잔함과는 거리가 먼 드라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주인공 두 명의 감정선을 잘 따라갈 수 있게 설계한 드라마도 아니다. 몰입해서 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10화 내내 루즈하고 지루하다.



주인공 홍지효이 가지는 이중적 의미 

뭐 그래도 팬의 마음으로 보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주인공 홍지효(전여빈)이 가지는 이중적 의미에 있었다. 홍지효(전여빈)은 사회에서 보면 '글리치(오류)'같은 존재다. 실종된 남자 친구를 찾기 위해서 직장 생활 다 미뤄두고, 막연히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 '외계인 목격자'인 데다 외계인 환각을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존재가 하늘빛드림교회에서는 '호산나', 그러니까 구원자로 지목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가짜 호산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집단 자살 사건으로 신도들이 죽을 뻔한 걸 막는 것도 이 홍지효(전여빈)이다. 하늘빛드림교회에서는 가짜 구원자였지만 사실 진짜 그들을 헛된 죽음으로부터 구원한 '진짜' 구원자인 셈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 <글리치>의 문제점이지만.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묘한 연출

<글리치>에서 굳이 또 볼만한 부분을 짚어보자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연출이다. 그게 '잘'됐다고 보긴 힘들지만 환상이 주는 특유의 기묘한 느낌 때문에 '볼 만하다'. 중요한 건 이 연출이 자꾸만 <보건교사 안은영>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것.



여하튼 뭔가 이 기묘한 느낌 덕분에 <글리치>는 마지막까지 정말 외계인지 존재하는 건지, 그냥 하늘빛드림교회의 농간인지 헷갈리면서 그거 결론 하나만 보고 꾸역꾸역 보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글리치>를 보게 만드는 이유가 그거 딱 하나인 게 아쉽다..



한줄평 : ��� 2.5/5
대놓고 못 만든 드라마는 아니지만, 리뷰 욕망이 없었다면 끝까지 못 봤다.



넷플릭스 한국시리즈들이 퐁당퐁당으로 자꾸 실패했다가, 좋았다가 한다. <글리치>는 정말 재밌게 잘 만들 수 있었던 소재였던 것 같은데 참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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