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도 각본도 연기도 엉망
쿠팡플레이가 '역대급 빌런'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미끼>를 봤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뻔한 소재에 연출과 연기, 각본도 부족한 콘텐츠였다. 그럼 리뷰 바로 시작
<미끼>는 십여년 전 벌어진 희대의 사기 사건, 빅스네트워크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희대의 사기 사건', '살인 사건', '희대의 빌런'. 대한민국 범죄 영화에서 뻑하면 등장하는 소재다. 특히나 해외로 도피하고 사망한 척하는 사기꾼 이야기는 이미 <마스터>가 있다.
잔혹한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복수의 의미로 계속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 <미끼>의 가장 메인 소재인데, 그게 너무 흔한 소재이다보니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심기일전하여 복수하는 그림은 너무 많이 봤다.
살인 사건과 사기 사건에 얽힌 비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사건을 수사하려는 형사와 뇌물을 받고 사건을 덮고 무마하려는 '윗대가리'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매분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물론 소재가 흔하다고 해서 영화가 무조건 진부하진 않다. 뻔한 소재는 그저 소재일뿐, 콘텐츠를 볼 원동력은 연출이나 찰진 대사, 액션, 연기, 화려한 화면 등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쿠팡 플레이의 <미끼>는 전개조차 뻔해서 도저히 볼 맛이 안난다. <미끼>를 보다보면 내가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예측한 다음 전개가 딱딱 들어맞으니까.
<미끼>의 또다른 단점은 매순간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허성태 배우가 맡은 희대의 사기꾼 노상천은 어차피 뻔한 캐릭터고, 빌런이다보니 <미끼>에 아주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지 않는 이상 주된 캐릭터는 또렷하다.
문제는 배우 장근석이 연기한 구도한이다. 구도한은 매순간 그 장면에 맞게 캐릭터가 변한다. 캐릭터와 입체적인 것과 캐릭터가 무너지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구도한(장근석)은 매순간 캐릭터성이 붕괴된다. 장면에서 필요한 성격만 갖다 쓰는 게 구도한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 사람을 집요하게 의심하며 '피의자'로 몰다가도, 개연성 없이 그 사람을 한없이 피해자로 생각한다. 어떤 순간에는 예리하게 사건 현장을 보며 인사이트를 던지지만, 살인 사건 현장에 있다가 의도적으로 잡혀온 사람이 누가 들어도 이상한 얘기를 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넘기기도 한다.
분명히 '예리하고 집요한 변호사 출신 형사'라는 설정을 집어넣었는데 각각의 설정들을 그저 필요할 때만 살리고, 그 외의 순간에는 그냥 자기 멋대로 던져져 있다. 그러다보니 <미끼>가 전개되는 내내 캐릭터가 방방 떠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요 조연으로 나온 인물들은 조연으로서 탄탄히 서사를 같이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소모품으로 쓰이기까지 해서 최악이다. 조연들은 그저 주요 등장인물들이 해야하는 대사, 혹은 해야 하는 행동, 혹은 연출하고 싶은 장면을 만들기 위한 대사나 행동을 할 뿐이다.
주연과 같이 호흡하는 조연 캐릭터는 그 역할이 뚜렷해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쿠팡 플레이 <미끼>는 마치 모든 조연들이 지나가는 행인1, 어디에 놓인 화분.. 뭐 그런 느낌이다. 예를 들어 장근석이 맡은 구도한 캐릭터가 예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무리 생각해도 사건 현장에서 모를 수가 없는데 구도한이 지적해야 고문된 흔적을 발견한다던지, 진짜 너무 말도 안되는 추리를 농담도 아니고 진지하게 던진다던지 하는 식이다. 주연의 캐릭터는 매순간 무너지는데, 조연조차 소품처럼 쓰이니 전개가 더 단조롭고 뻔하게 느껴진다.
<미끼>는 연출조차 너무 뻔하고 올드하다. 문제는 <미끼> 내에서 뭔가 참신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오는 경찰서 앞 바닥을 비추다가 그대로 가로등이 켜진 골목의 바닥으로 바뀌는 장면이라던지, 누군가 목격한 살인 현장을 고정시켜두고 해당 현장을 조사하는 장면으로 바뀐다던지 하는 부분들은 이미 너무 많이 본 연출이다.
물론 소재나 전개 방식에 따라 꼭 쓰여야만 하는 연출이 있고, 장면 전환 방식도 잘 쓰이는 방식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쿠팡 플레이 <미끼>에서는 유독 부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게 있다보니, 마치 칭찬받고 싶어 안달난 누군가의 그림을 보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연출이나 장면 전환은 보는 사람이 아예 인지를 못하거나 아니면 의미를 바로 알아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어려운 영화가 아니고서야 정말 기깔난 연출은 대중들이 감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끼>의 연출이 '참신해보이고 싶은 뻔한' 연출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 <미끼>에서 연출이나 장면전환이 굉장히 어색하다는 걸 말해준다.
설명이 필요한 드립은 실패한 드립이듯, 연출과 장면전환도 마찬가지다. 보는 흐름에서 확 인지가 됐는데, 의미를 도저히 모르겠거나 여기에 그 연출을 갔다 쓴 게 이해가 안된다면 실패한 연출이다. <미끼>에는 그런 게 너무 많다.
드라마든, 연극이나 뮤지컬이든 정도의 차이일 뿐, 어쨋든 허구의 이야기다. 명백한 차이는 연기와 연출에서 드러나는데, 연극과 뮤지컬은 무대 위에 벌어지는 라이브 공연이라는 특성상 동작이나 표현이 의도적으로 작위적인 순간이 많다. 카메라가 배우들의 얼굴을 촬영해서 쏴주는 게 아니라서 어느 객석에 있는 관객이든 연기 자체가 인지되고,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뮤지컬에서 꼭 나오는 장면'이라며 패러디하는 것들은 사실 카메라가 해줘야할 역할을 연기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는 이러면 안된다. 그건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을 굉장히 방해하기 때문인데, 이건 연출이나 연기 모두 해당한다. 그래서 연극에서는 어색하지 않던 연기가 드라마에 올려두면 엄청 어색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건 <미끼>가 허성태 배우의 연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장면들이 쓸데없이 작위적이었다.
자신을 파괴해보고 싶었다고 했던 장근석 배우는 시종일관 혼자 둥둥 떠있다. '발연기'까지는 아니지만 <미끼>에서 구도한이 아니라 그냥 장근석이다. 뭐랄까 수염을 길러서 수염을 기른 사람의 톤에 억지로 맞추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수염을 길렀다고 해도 본인만의 느낌으로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었을텐데 겉모습에 묶여 있는 연기였다.
캐릭터성이 무너진 주연들과 소품으로 그쳐있는 조연들에 장면장면이 작위적이니까 <미끼>는 보는 내내 참 어색하다. 형사들이 추격하는 장면에서 형사는 무조건 주변 인물과 부딪힌다. 진짜 무조건. 딱 한 순간은 뭔가 뒤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할 법한 인물과 부딛혔지만, 나머지 장면들에서는 꼭 저렇게 했어야 했나 싶다.
또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인 곳에 구도한이 등장하자 박수를 쳤던 장면도 그렇다. 대사도 너무 작위적이고 뻔한데, 노상천 수사하는 형사님에게는 박수쳐드린다며 박수까지 두번이나 치니까 엄청 못 만든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차라리 연극이면 오히려 신선했을지도 모른다.
여튼 쿠팡 플레이 <미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쿠팡 플레이 <어느날>을 보고 내심 기대했던 오리지널 콘텐츠였는데, 연출, 각본, 연기, 대사 등 모든 요소들이 다 따로 노는데다가 소재까지 진부하다보니 영 볼 맛없는 콘텐츠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