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 3
이번 제주 여행은 무계획에 가까웠지만 딱 하나 리스트에 올려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스쿠버 다이빙이다. 단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 내게 즐거운 상상을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거북이와 함께 수영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막연히 언젠가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수영이라고는 아기스포츠단에서 배운 배영(입으로 숨을 쉴 수 있다는 점 때문에)밖에 할 줄 모르고, 물공포증이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편도 아니었다. 이미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는 후배는 내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마음이 줄다리기를 하며 주춤거렸다. 그래도 호기심이 이기기를 내심 바라면서.
동화책에서만 보았던 토끼와 자라가 용궁으로 향하던 바다. 열 번도 넘게 본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바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일. 상상과 영상으로만 접하던 세계를 실제로 경험하는 일은,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 경험의 본질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자격증이 없는 나는 체험다이빙을 신청했다. 체험다이빙은 전문 다이버가 상시 함께하며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사실상 나는 그분 손에 이끌려 움직이는 지느러미에 불과하다.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낑낑대며 잠수복을 입고 배에 올라탔다.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라 미리 멀미약도 챙겨 먹었다. 사람 열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작은 통통배는 출렁거리는 파도를 거슬러 십오 분 정도를 나가 범섬 근처에 멈춰 섰다. 산소통이 달린 구명 재킷을 입고 무거운 납덩이들을 허리에 찼다. 납이 어찌나 무거운지 이대로면 꿈쩍도 못하고 가라앉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입으로 호흡하는 법을 연습하고 마지막으로 물안경까지 썼다.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입수가 시작됐고 천천히 배에서 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바다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해변에서 내 발로 물의 깊이를 가늠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것과 바다 한가운데 갑자기 던져진 듯한 기분은 전혀 달랐다. 거센 파도가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밀려들었고, 발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숨 쉬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처럼. 이미 수중호흡기를 물고 있어서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다이버는 괜찮냐며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니요, 아니요. 안 괜찮아요! 속으로 외치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얼굴을 물속에 넣어보라는 말에 겨우 따라는 해보았지만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 짧은 순간 느낀 두려움은 마치 죽음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안 되겠는데.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러다 죽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이 몰려오자 점점 숨이 더 가빠지고 과호흡이 왔다. 아, 패닉상태라는 게 이런 거구나. 다이버는 계속해서 괜찮냐는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도저히 괜찮지 않았다. 어쩌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후배도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데. 그런데 그때 교육 중에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제일 많이 겁을 먹어요.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너무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차분히 호흡하는 법만 생각하려고 해 보세요. 그 순간만 이겨내면 정말 아름다운 바닷속을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난 지금 단지 겁을 먹은 것이야. 이 순간만 잘 넘기면 나도 바닷속을 유영하는 한 마리 인어가 될 수 있어! 배운 대로 숨을 쉬어보자. 차분하게. 코로 들이쉬지 말고 입으로만. 후-하. 후-하. 그렇게 숨을 쉬기 시작하자 가빠졌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손으로 OKAY 사인을 만들었고 그렇게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법적으로 체험 다이빙은 수심 10m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퀄라이징(압력평형, 귀의 이관을 강제로 여는 방법)이었다. 겨우 호흡을 안정시켰더니 이번엔 고막 통증이라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압력으로 인해 귀가 터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사전에 배운 대로 이퀄라이징을 열심히 시도해 봤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시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그저 배운 대로 계속 시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의 반복 끝에 마침내 지지직 퐁퐁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열리는 느낌이 들며 통증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내 눈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푸른 심연 속 바다의 정원이.
돌벽에 붙어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불가사리, 형형색색의 작은 물고기들이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처럼 바삐 움직이는 풍경, 그리고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떼 지어 유영하는 광활한 바닷속. 수면 아래 피어난 정원의 꽃 같았던 산호초.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의 기묘한 질서와 아름다움. 오로지 들려오는 것은 규칙적인 내 숨소리뿐. 귀에 차오르는 압력으로 고통이 반복해서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진 이 찬란한 세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했다.
두 세계의 공존. 산소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세계와, 산소 없이도 완벽히 생존하며 유영하는 생명체들의 세계가 한데 맞닿아 있었다. 그 경계선을 넘어 산소통을 짊어지고 그들의 영역을 탐험하는 일. 물속을 헤엄치는 일은 단순히 스쿠버다이빙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나만의 작은 우주 탐험이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인 것 같아
언젠가 후배가 내게 건넨 이 말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남은 한 톨의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 자신과 나를 응원해 주는 주위 사람들의 힘을 믿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우주를 경험하고 있었을까?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뒤돌아섰더라면, 불안감에 항복했더라면. "두려움은 주저함을 만들고 주저함은 두려움을 실현시킨다"는 말처럼, 두려움에 도망쳤더라면? 하지만 그 순간, 도망가지 않고 직면한 나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나의 가능성을 믿는 일, 그리고 나아가는 일. 때문에 나는 이 경이로운 바다의 세계를, 아니, 이 새로운 우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는 일은 재미난 액티비티 이상의 의미였다. 단순히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를 믿는 법, 두려움을 넘어서는 법, 그리고 내 마음속의 우주를 확장하는 법을 깨닫게 해 준 특별한 순간이었다. 다음번에는 더 자유로이 그 세계를 탐험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