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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Feb 14. 2022

자랑스러운 ‘엄마’와 미운 ‘친정 엄마’

내 이름 잊히는 것이 두려워 엄마 이름을 뺏으려 했다


먹성 좋은 아기는 자주 젖을 달라고 보챘다. 산후조리를 도와준다고 집에 와있던 친정엄마는 더 먹이라고 재촉했고, 나는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양을 넘었다고 주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젖을 왜 안주냐 화냈고, 나는 발 구르며 좀 내버려두라고 소리쳤다. 내 배 아파 낳은 아기 밥 주기 싫다고 울었다. 남편은 밤늦게 퇴근했고, 친정엄마가 내 밥을 담당했고, 아기 돌보기는 나 혼자 했다. 낮밤 할 것 없이 한 시간 쪽잠 겨우 자며 나의 예민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4시간 넘게 버스타고 다른 도시까지 와준 고마움과는 별개로 아기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않는 친정엄마가 야속했다. 젖 먹이고 트림시키고 똥 치우고 재우고 다시 젖 먹이고 트림시키기의 무한반복으로 꾸벅꾸벅 졸던 밤. 옆방에서 자는 친정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이가 낮잠 든 틈에 책을 펼치거나 텔레비전을 켜면 엄마는 애 잘 때 안자고 딴 짓한다고 잔소리를 했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왜 모르냐고 날을 세웠다. 한 달이 지났고 엄마는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 찬밥대접이라고 서운해 하며 돌아갔다.




엄마가 친정엄마가 되면서 달라진 건 나였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우리는 사이좋은 모녀였다. 십 오년 떨어져 살아서 사생활은 적당한 거리를 두었지만 한 번 통화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수다가 이어졌다. 섭섭한 일은 바로 이야기했고, 사과도 즉시 했다. 하고 싶은 말 마음에 담아두고 못사는 나는 엄마를 닮았다. 나의 출산 후 우리 모녀는 긴 대화를 피한다. 전화를 해도 안부만 묻고, 아이에게 바통을 넘긴다. ‘엄마’가 ‘친정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우리는 왜 달라졌을까? 


내가 봐 줄 테니 낳기만 해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올라와서 봐주겠다는 말에 나는 아이 낳고도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너 일할 때 맨날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싶다 했잖아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까 달라진 엄마의 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도움 받을 생각이었기에 당황했다. 가족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되지 않고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지 말지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원망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원망했다. 되짚어보니 이 지점부터 서운함이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무녀독남으로 태어난 남자와 결혼해 시부모 모시고 살다 뒤늦게 아이 셋 뒷바라지 위해 ‘워킹맘’으로 20년을 살았던 엄마. 한 번도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한 적 없는 엄마는 은퇴하면서 달라졌다. 옷을 사고 춤을 배우고 노래교실에 다녔다. 예순 넘은 엄마의 변화를 부추기고 응원한 건 나였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어서 자랑스럽다고, 더 이상 가족을 위한 희생 따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나였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엄마가 친정엄마가 됐다고 다른 마음을 가지는 나의 이중성이 화나고 부끄러워서 손주 돌봄과 관련된 원망은 꾹꾹 마음깊이 눌러놓았다. 그렇게 숨겨 놓은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튀어나올 때면 나는 흠칫 놀라며 죄책감에 쪼그라들었다. 화를 내야 할 상대를 잘 못 택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화를 내야 할 상대는 따로 있었다 



 십년을 일했어도 내 사정은 관심 없는 일터, 아이와 일 중에 하나만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 그렇게 일하고 싶으면 베이비시터를 쓰면 되지 않냐, 당장 먹고살 돈이 없어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배부른 고민 아니냐는 말들 속에서 입은 상처. 몇 번은 말문이 막혔고, 몇 번은 진짜 그런가 생각했다. 그렇게 표현되지 못한 분노는 가장 만만한 사람인 친정엄마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돌봄으로 인한 한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매끈하게 잇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초에 끊어서는 안된다고 한 선배는 말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친정엄마나 시엄마처럼 또 다른 여성의 노동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되고 이후 육체적으로 약해진 조부모 돌봄으로 또 한 번 경력단절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돌고 도는 연쇄적 ‘돌봄’의 굴레.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무렵 일터 동료에서 육아 동지가 된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일 한 게 아깝지도 않냐. 아이는 내가 봐주겠다”는 친정엄마 말에 용기를 냈고, 어렵게 복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손주 육아 정말 힘든 일인데 몸 축나지 않게 잘 챙겨드려라, 금전적인 보상도 꼭 해드려라 훈수를 뒀다. 부러웠다. 너도 한 번 부탁드려 보라는 친구의 말에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나는 친정엄마가 손주 돌봄을 하겠다고 나서면 거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럴 일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칠순이 넘은 엄마의 체력, 익숙한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아이와 고립될 가능성, 물리적 거리. 모녀 관계에서 빠져나와 이성적으로 따져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가끔 위로하고 가끔 미워하며 자기 이름은 각자 찾기 



왜 어떤 여성에게 출산은 이전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할까.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사노동과 육아는 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돌봄의 주체는 왜 항상 여성인 걸까. 내가 화를 내며 상대해야 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정리되지 않는 의문 속을 맴돌고 맴돌며 배회하다 보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경력단절 여성’으로 단순화 되어서는 안 되듯 나의 엄마 또한 ‘친정엄마’로 단순화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더 이상 돌봄을 원하지 않는 엄마에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또 한 번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내 이름 잊히는 것이 두려워서 엄마 이름을 뺏고 싶진 않으니까. 엄마 희생의 악순환은 끊어져야 하니까. 가끔 미워하고 가끔 위로하며 자기 이름은 각자 찾는 걸로. ‘가족’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사진 출처 : ⓒsilviarita,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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