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사이 Jan 23. 2024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살아가는 미물, 우주를 품다

‘코스모스’를 읽고

코스모스(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하늘, 지구, 태양계, 은하수 은하, 우주 전체를 아우르고, 다시 돌이켜 인간을 분해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것의 대서사시라 표현할만하다.

당장 내 앞의 일에 식은땀 흘릴 때,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삐걱일 때, 깊게는 인생의 의미를 두고 헤멜 때,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우주와 인간’을 사랑한 과학자의 사유이자 호소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p36


<코스모스> 속 역사는 크게, 기원전 6c 이오니아의 과학적 세계관, 실험을 천시하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정신과 노예제의 병폐-도전보다는 현상 유지-, 기원전 1c부터 몰락하는 그리스 과학, 3c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파괴, 천년에 걸친 중세 교회의 억압, 14c 르네상스 개화, 16c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17c 네덜란드의 사상적 자유와 탐험, 18c 근대 과학의 발전, 그리고 현재로 짜여있다.


17세기 천체 운동의 3법칙을 정립한 케플러의 지난한 시행착오는 달과 화성을 넘어 태양계 경계를 향한 보이저호의 씨앗과도 같다. 한 세기 뒤, 뉴턴은 끈질긴 호기심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케플러의 법칙을 증명한다.

“나는 이제 세계의 기본 얼개를 선보이겠다”

만유인력을 소개하는 그의 한마디는 결코 오만하다할 수 없다.


4장부터는 달부터 지구형 행성, 목성형 행성을 하나하나 거명하며, 역사 속 상상의 모습부터 탐사를 통한 검증까지 순차적으로 서술하는데, 마치 우주선을 타고 ‘도슨트’ 칼 세이건의 설명을 들으며 태양계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하다.


특히, 화성에 대한 관심은 매우 흥미롭다.

월리스는 로웰의 주장과는 반대로, 화성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0’이라고 결론 내린다. 찰스 다윈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발견한 바로 그 월리스다. 이후, 답을 찾기 위한 러시아와 미국의 탐사 여정을 소개한다.

결과적으로, <우주전쟁>과 같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칼 세이건의 (당시) 대답이다. P259


9장부터는 별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우리 역시 코스모스의 자녀들임을 나타낸다. 약 138억 년 전 대폭발 ‘빅뱅’에서 우주는 시작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이후, 에너지와 물질의 수렴과 발산은 수소 원자를 시작으로 핵융합하여 보다 무거운 원자들을 쏟아냈다. 은하의 적색 편이와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 운동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정말 힌두교의 가르침처럼 ‘우주란 신의 꿈에 불과할까?’ p516


11장에서 지구로 돌아와 자연과 인간을 생각한다.

인간은 두뇌 속 R-영역의 폭주를 막고, 대뇌피질이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DNA에 모든 역사의 진보를 기록할 수 없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되물려주기에는 수명도 짧다. 그래서 우리는 뇌의 크기를 키워왔다. 다만, 늘어난 뇌를 채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행히 ‘기억의 대형 물류창고’ 도서관이 있다.


12장부터는 외계 문명 존재 가능성을 계산해 보고, 조우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때, 우리 인간은 지구를 대변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두려움에서 비롯된 미신과 적개심을 떨쳐내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우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p682


칼 세이건이 드러내는, 개개인의 고유성에 기반한 생명 존중은 분명 <종의 기원>에 닿아 있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 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종의 기원> p650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고,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해 돌아온다. ‘나’란 존재는 우주에 비하면 티끌보다 작고, 푸른 점 위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다. ‘나’ 역시 세포와 DNA, 원자, 나아가 쿼크에서 바라보면, 광활한 우주와 다름없다. 결국, ‘나’는 먼지이자 우주다.  다시 말해, 우리 각각은 보잘것없는 먼지이기에 집착하거나 우열을 다툴 필요 없는 동시에, 우리 각각은 경이로운 우주로서,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가 곧 코스모스다.


p.s. <종의 기원>, <우주 전쟁>, <플랫랜드>를 먼저 보길 제안한다.

작가의 이전글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여전히 배고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