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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n 19. 2024

두려워할 것은 인간지능

수확자 시리즈(닐 셔스터먼/이수현 옮김)

“… 만약에 이미 완벽한 세상에서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봤어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결국은 완벽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디스토피아처럼 변해갈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에 녹여냈어요.” <채널예스, 닐 셔스터먼 『게임 체인저』 출간 인터뷰 중>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오늘날과 같은 ‘사망 시대’가 일반인공지능인 ‘선더헤드’에 의해 막을 내린다. 세상의 모든 카메라와 통신 등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 개개인과 완벽히 소통가능한 인공지능은 더 이상의 사건, 사고, 재해를 용납하지 않는다. 진보의 완성이자 살아있는 지구 자체인 ‘선더헤드’의 온실 안에서, 인류는 무한 재생될 수 있기에 죽음을 그저 ‘철퍽’이란 오락거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선더헤드’가 통제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영원한 죽음, 즉 재생 없는 사망이었다. 유한한 자원과 인구수의 적절한 균형이란 미명 아래, 특정한 인간 집단에게 사신의 자격을 주었으니, 그들이 바로 ‘수확자’다. 수확자 시리즈는 바로 ‘수확자’ 조직 속의 갈등과 균열, 이들을 거부하는 새로운 종교 집단 ‘음파교’의 무기력한 저항, 그리고 인류를 사랑하는 ‘선더헤드’ 간의 대서사시다.


과연, 사람의 목숨을 합리성이란 저울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일까?


수확자 시리즈가 파격적인 것은

계약조차 어길 수 없는 경직된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해 겪는 내적 갈등을 그린다는 점, 인류 지식이 포화상태에 도달하고 인구 밀도를 낮춰 폭력마저 종식했을 때조차 겪을 수 있는 문제를 그린다는 점, 생명을 거둘 수 있는 자격도 역시 권력이 될 수밖에 없고 보수와 진보의 가치 대립이 암세포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점 등을 그려내고 있으며, 지독한 혼란 속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결국 독자에게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닐 셔스터먼의 인터뷰 내용처럼, 유토피아는 애초에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닐지 모른다.

음습한 구석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단 한 명의 인간에서 비롯된 거친 욕망이,

보도블록 사이에서 돋아나는 잡초처럼 단 한 명의 인간에서 비롯된 순수한 호기심이,

유토피아를 통째로 뿌리 뽑을 수 있다.

수확자 시리즈에서는 수확자 고더드가 광기 어린 대학살을 벌이며 권력에 매몰되고 만다. 선더헤드와 수확자의 균형이 무너졌다.

<기억전달자>에서는 조너스가 ‘임무해제’ 당할 생명을 안고 커뮤니티를 탈출했다. ‘늘 같음’ 상태에 균일이 발생했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거두는 세상은 공리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사는 세상’

그렇다면, 판사, 검사, 의사도 공정하고 실수가 없도록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견지에서 볼 때, 인공지능에게 인구 조절을 맡기는 것은 어떤가?

지금도 81억 명의 인구수는 멈추지 않고 상승하고 있다. 1798년 맬서스 인구론이 나왔을 때 인구수는 약 8억 명이었다. 인류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못지않게 식량 생산량도 폭발적으로 늘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인류의 증가 속도만은 맞춘 듯하다. 220여 년 만에 10배가 되었으니.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등 늘어난 인간종의 부작용을 보면, 지구 입장에서는 퇴치하고픈 유해종일테다. 인간종을 선택한 DNA의 영속성 차원에서 봐도, 이미 후손들의 미래 자원을 대출하여 탕진하고 있으니 도태종으로도 낙점일 테다.

자, 어떤가. 인공지능이 주관하는 인간 러시안룰렛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가?


난 모르겠다. 지구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인생게임 플레이어로서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아직 팀킬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키워낸 걷잡을 수 없는 욕망덩어리가 자원량의 한계에 근접할 때 ‘수확자’든 ‘임무해제’든 생명은 재고처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안다.

아마도, 나만 살겠다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이기적 성공주의, 나만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대립관이 결국 파멸의 포문을 열어젖히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주리라.  


이것이 바로 수확자 시리즈의 경고라고 생각한다.

두려워할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지능이다.


부디, 달을 향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나 일론 머스크의 화성 테라포밍이 성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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