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빅 피쉬>, 팀 버튼, 2003
사람들은 블룸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즐거워하지만, 사실 블룸은 현실을 도피하는 거짓말쟁이일 뿐이다. 라고 아들 블룸은 생각한다. 절대 ‘팩트’를 말해주지 않는 아버지,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는 아버지, 결혼식 날마저도 자신이 태어나던 날 강가에서 ‘빅 피쉬’를 잡았다던 이야기나 해대는 아버지. 아들 블룸에게 아버지 블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가 거짓 이야기로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들 블룸은 신문기사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던 아들 블룸에게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아들 블룸은 아내와 함께 부모님 집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이전과 변함이 없다. 사실을 말하라고 채근하는 아들과 여전히 온갖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아버지. 이 지루한 관계에 역동을 만들어주는 건 아들 블룸의 아내인 조세핀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듣는 아내 조세핀은 아버지에게 진절머리가 있는 아들 블룸에게 아버지와 얘기를 나눠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부자에게 대화의 양이 부족했던 게 문제는 아니었다. 아들 블룸은 아버지에 대한 힌트를 들으려고 한 오두막에 찾아가 오두막의 여자에게 “당신이 나의 아버지와 바람을 피웠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그 여자는 “왜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아들 블룸은 아버지와 대화가 부족해 묻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 블룸의 말마따나 그는 아들 블룸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 천 개도 넘을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아들 불름은 아버지의 말을 결코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묻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블룸은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아버지가 했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의 물증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위급한 상태에, 아내 조세핀의 마음이 원동력이 되었는지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종이 한 장에 적힌 주소로 무작정 찾아간다. 그 마을은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는 길에 들렀다던 마을이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에 사는 한 여인 역시 아버지 이야기에 나오던 꼬마 아이였으며, 아들 블룸은 이 오두막에 살던 여자로부터 사실이라 부를법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 블룸은 곧 아버지가 위급하여 병원에 실려 간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 블룸은 임종에 직면한 순간, 이야기 속에서 보았다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숨 겹게 말한다. 영화에서 아버지 블룸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던 아주 ‘특별한 임종의 순간’을 말이다. 아들 블룸은 아버지처럼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을 아들 블룸은 자신의 이야기에 불러낸다. 아들 블룸의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는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빅 피쉬’가 등장했던 그 강가로 돌아가 스스로가 ‘빅 피쉬’가 된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이야기의 끝은 이야기의 끝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아버지 블룸은 이것이 바로 내가 보았던 ‘특별한 임종’이라 말하고 눈을 감는다.
아버지는 틈 만나면 사람들에게 ‘빅 피쉬’이야기를 해댔을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아예 ‘빅 피쉬’이야기로 시작해서 ‘빅 피쉬’이야기로 끝이 난다.아버지 블룸이 했던 모든 이야기는 그의 진실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 탄생한 ‘빅 피쉬’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임종에 이르러서야 아버지 이야기의 실체를 알게 된 아들 블룸은 지겹도록 들어왔던 ‘빅 피쉬’ 이야기가 아버지의 사랑 법이었음을 또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들 블룸이 임종을 맞은 아버지를 ‘빅 피쉬’로 돌려놓은 것은, 그가 아버지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들 블룸이 아버지 블룸을 이해하는 것이 아버지가 그려왔던 ‘특별한 임종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병상에 누워있었던 아버지 블룸은 사실을 말하라고 채근하는 아들에게 영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난 결코 너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어디까지가 거짓부렁이 이야기였고 어디서부터가 사실인 현실이었는가? 이야기라는 것은 사실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각색본일 따름이 아니었다. 아버지블룸의 이야기에는 아들이 태어나던 순간에는 아버지가 그 날 함께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남편 블룸의 이야기에는 아내 산드라와 떨어져있던 날들에는 아버지가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은 사실과 거짓의 프레임으로 그 가치를 격하시킬 수 없다. 오히려 사실도 거짓도 아닌 진실은 사실과 거짓의 프레임 밖에 존재한다.
빅 피쉬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아버지가 아들 블룸에 의해 다시 빅 피쉬가 되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판타지가 아니다. 아버지 블룸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그의 장례식에 모두 등장하는 것은 감독이 이 영화를 판타지로 만들고 싶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화려한 이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 결국 해낸 것은 무엇이었는가? 결국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부자사이의 간극 좁히기에 성공한 것이었다. 사실과 거짓의 프레임으로 왜곡되었던 한 사람의 진실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말이다.
팀 버튼은 이야기와 현실, 거짓과 사실의 경계를 뭉개버린다. 사실주의에 익숙한 우리는 어떤 것이 과학적/논리적이지 않다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사람들은 같은 순간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은 명확히 따로 존재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실’과 다른 오류투성이의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즉 세상에는 사실과 거짓만이 존재하는가? 아니, 세상에는 완전한 ‘사실’ 혹은 ‘거짓’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오히려 누군가의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