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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Apr 06. 2018

눈앞에 다가온 한국의 인구문제

<한국이 소멸한다>에서 본 적나라한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말 세게 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끔은 말의 세기가 확신의 강도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선동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나란 인간도 상대가 말을 세게 할수록 설득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계심과 반발심이 커지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 책이 딱 그랬다. 인구라는 식상한 소재를 들고 와서는 한국이 소멸한다느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책장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은 '센' 책에도 알짜는 있나 보다. 주제는 진부했지만, 자료가 워낙 꼼꼼하고 디테일이 훌륭했다. 인구가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조명했고, 또 그와 관련한 현실인식도 상당 부분 공감했다. 또한 약간의 억지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사회현상도 설명하려고 애썼다. 기본이 훌륭한데 너무 포장이 과해서 의심스러웠다고 할까.

총 4장의 구성 중에 1장은 으레 그렇듯 인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지루한 장이고, 2장은 청년과 생산가능 인구, 3장은 중년, 4장은 노인과 사회에 대해 다룬다.

2장에서는 인구감소에 따른 생산가능 인구 감소는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당연한 이야기로 시작. 그런데 최근의 일본의 경우는 20년 전부터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었는데, 최근 경기 호황을 맞아 취업 천국으로 변신했다. 물론 일자리의 양은 늘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질 자체가 좋아진 게 아닌 건 사실. 한국은 2030-40년에 일본의 뒤를 따르게 될 텐데, 일본의 사례를 볼 때 지금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출산을 선택하고 있지만, 지금 아이를 낳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꽤 괜찮은 선택일 거라고 본다. 단, 한국이라는 국가의 경쟁력이 꽤 괜찮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과 글로벌 경기가 받쳐준다는 가정이 필요.

3장이 참 재미있는데 중년들에 관한 이야기. 최근 다른 곳에 58년 개띠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흥과 민주화를 이끈 자부심을 가진 동시에, IMF의 아픔을 간직한 세대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사회보장의 책임은 가족/이웃에서 기업으로 넘어갔고, 이들 세대는 직장에서 열심히만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분들이다. 그런데 IMF 이후 고용보장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면서 직장을 떠나게 되면 가정이 파탄 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뿐인가. 은퇴가 눈앞인데 수명 증가에 따라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기간은 더욱 늘어나고, 취업하지 못하고 집에 있는 자녀들을 언제까지 서포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가운데 가정경제를 담당하는 중년에게 은퇴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본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파탄 나고 파산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이며 1천만 명에 이르는 중년들의 위기의식과 피해의식을 무시할 수 없다.

4장은 노인과 사회다.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건 사실. 흥미로운 부분은 서울의 인구는 줄고 있는데, 서울에서 노인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 즉, 젊은 층은 탈서울, 노년 층은 인 서울이라는 말. 젊은 층은 높은 주거비용으로 경기도로 밀려나고, 노년층의 경우 여력이 되는 사람은 병원 인프라가 좋은 서울과 강남구로, 또 돈이 없는 노년층은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올 수밖에 없다는 것. 돈이 있건 없건 나이가 들면 서울이 필요하다.

가장 임팩트가 있는 문장은 노인복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고령화에 따라 노년층 유권자 비중이 올라가고 노인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저자는 어느 순간부터는 정부가 노인복지를 위해 쓸 돈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도 과거 노인을 위한 시설과 복지에 과다한 재정을 집행한 것을 후회하며, '노인을 위한 사회'에서 '청년을 위한 사회'로 슬로건을 변경한 예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한정된 국가재정을 노인에게만 쓰게 되면 중장기적 국가 성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님 다운 옳은 말이긴 하나, 국회의원이나 정권이 천년만년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의 표심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지언대 아주 훌륭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 "미래를 위해서는 노인보다는 청년에게 투자해야 합니다"라고 용기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한정된 국가재정을 더 확보하기 위한 세대 간의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며, 한동안은 정치적 다수인 노년층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정말 다수의 국민들이 이제는 청년층을 최우선으로 돌봐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전까지는. 그리고 불행히도, 그 위기의식을 모두가 느낄 때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위기를 경험했고, 이젠 정체된 상태에 이르다 보니, 세대 간에 경험, 인식, 그리고 삶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람들은 세대 간에 거의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모든 세대들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지금, 그리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 그나마 우리가 가진 마지막 여력-정부의 얕은 재정-으로 어떻게 지친 국민을 설득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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