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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Apr 21. 2018

자본없는 자본주의, 그리고 가치투자

'Capitalism without capital' 시대와 투자의 미래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사라지고 있다.


현대의 자본은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조나단 해스켈과 스티앙 웨스트레이크의 저서 <자본없는 자본주의>에서는 유형(tangible) 자산이 가진 중요성이 줄어들고 무형(intangible) 자산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아래 그림은 유럽과 미국에서의 유무형 자산에 대한 투자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각각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격차를 좁혀가다가 2000년대 후반에는 역전, 이후에도 격차를 점점 벌려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유무형 자산의 GDP내 비중변화


무형자산 투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첫째로는 자동화를 통한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서비스업보다 빨라서 제품 가격이 서비스 가격보다 더욱 낮아진 탓이다. 즉 서비스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노동집약적 성격을 지닌 무형투자의 비중이 높아졌다.


둘째로는 IT와 관리기술의 발전이다. 우버의 가장 큰 자산은 운전수들과의 네트워크다. 이는 물론 과거에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자를 연결하고 운전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지면서 우버가 가진 무형자산의 가치는 더욱 증가할 수 있었다.  


셋째는 글로벌화다. 글로벌화에 따라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스타벅스의 브랜드와 페이스북 소프트웨어가 가진 파워는 무한히 확장할 수 있었다. 만약 무역장벽 등으로 시장규모가 국가나 지역별로 한정되어 있다면, 그들이 가진 무형자산의 가치는 훨씬 덜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넷째는 산업의 구조변화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며, 이는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어나면 노동집약적인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증가한다.


굳이 통계와 차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알고 있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 회사인 애플은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세계 최대의 운송회사인 우버는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세계 최대 판매점인 아마존은 매장이 없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는 심플하기 그지없다.


워렌버펫은 지난해 연례총회에서 “나는 구글에 대해서 틀렸고, 아마존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너무 멍청했다”는 자기반성이 담긴 고백을 했다. 세계 최고의 가치투자자가 이익도 잘 나지 않는 회사들의 주가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성의 주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실제 그는 2000년 IT버블 때는 IT산업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그가 보유한 월마트, IBM 등 과거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질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다.


지난 수년간 나타난 FANG의 약진과 워렌버펫의 반성은 우리와 같은 가치투자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가치투자자의 대표적 특징은 기업가치 평가에서 나타나는 ‘보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수성은 기업가치를 이루는 3가지 요소, 자산/수익/성장가치 중에서 자산과 수익가치에 높은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것에 기반한다. 불확실한 성장가치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는 자산가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PBR(Price-to-Book Ratio)은 가치투자자들이 대표적으로 애용하는 지표다. 회사의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이 비율이 낮을수록 안전마진이 크다고 해석 가능하다. 예를들어 PBR이 1보다 낮은 것은 보유한 자기자본대비로도 시장가치가 낮다는 얘기니 이론적으로는 당장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주주가치에 유리할 정도다. 참고로 'POSCO'의 PBR은 0.6배인 반면, 최근 상장한 ‘카페24’는 현재 PBR이 20배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PBR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단순히 저평가와 고평가를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이미 워렌버펫도 반성하고 있지 않은가?


현 회계제도에 기반한 상대적 가치평가방법(PER, PBR)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 회계에서 무형의 가치는 상당부분 비용 처리되고 자산화되지 않는다. (회사정책에 따른 차이는 존재한다) 따라서 무형투자가 많은 회사일수록 수익성은 낮고 순자산의 가치도 낮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투자자라면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회계상 장부와 이익이 실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고 이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괴리는 회계적으로 무형자산을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던져준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는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고 있고, 또 일부 기업들은 외부감사에서 자산화 이슈관련 적정의견을 받지 못하며 주가는 급락했다. 무형의 투자에 대해 어디까지 비용화하고 어디까지 자산화하는 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유형자산의 경우 1) 외부 중고유통시장에서 매매가 가능하고 2) 그 가치에 대해 합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무형자산은 1) 유통시장에서 거래가 어렵고 2) 그 가치에 대한 합리적 측정이 어렵다.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기에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래서 현대의 가치투자자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 ‘눈에 보이는 자산’과 ‘눈에 보이는 이익’이 실질 기업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 추세는 점점 더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회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회계만 가지고 기업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업의 미래가 있고, 그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는데 투자의 미래가 있다. 가치투자자가 보이지 않는 가치에만 매몰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보이는 가치에만 집착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시대다. 가치투자는 옳다. 그런데 과연 그 가치라는 게 무엇이냐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옳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조화로운 평가가 가치투자의 미래라고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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