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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Aug 12. 2017

애덤 스미스의 우아함

현대사회에서 왜곡된 그의 사상에 대한 항변 

인간 사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을 앞두고 한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세기의 대결을 앞둔 사람 중에서 저렇게 우아하게 결의를 표현한 사람이 있었을까. 바둑엔 까막눈인지라 바둑에서 사고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문득 240년 전 애덤 스미스의 사고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그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지만 시대적으로 그의 업적은 동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갈등을 말끔히 해결해 준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학과 철학 중심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맞이한 사회, 그 속에서 개인들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지만 대놓고 밝히면 안 될 것 같은' 혼란에 있었을 터. 그 와중에 그저 '남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 잘하면 그게 국부를 늘리는 길이다'라고 말해주는 애덤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굴레를 벗기고 자유를 선사한 선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의 사례도 있다. 존 나이스비트의 <메가트렌드 차이나>라는 책에 따르면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중국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정신의 해방'이었다. 그는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세뇌 정책에서 벗어난 정신적 해방이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함이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저변의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제도에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정신적 해방, 즉 교육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핵심 구호는 다소 과격하나 명쾌하고 힘이 있었다.


우리 영혼을 구속하는 족쇄를 벗어던지자!

다시 애덤 스미스로 돌아와 그가 시대적 의미를 넘어 그가 아름다워 보인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이었다. 국부란 국가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총합이라고 새로이 정의한 것. 그리고 자유방임과 보이지 않는 손이 오작동할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인간의 이타심(허영심)이 균형에서의 이탈을 막아줄 수 있을 믿음이 그것이다. 그가 언급한 허영심이란 것은  지금 시대에 비추어 보면 다소 나이브할 수도 있지만 시스템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견고한 도덕철학의 바탕 위에서 성립되어야 할 그의 경제론이 현대 우리 사회에서는 기득권의 방어 논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은 개탄스럽다. 개인으로서의 이타심과 경제/사회제도의 Justice가 충족되는 조건에서만 그의 논리는 유효하다. 각종 편법과 위법을 통해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한 자들이 불리할 때마다 들먹이기에 그는 너무 고결하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개인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저 단편적인 워딩과 이미지로 기억되겠지만, 그럼에도 애덤 스미스는 수고를 들여 입체적으로 이해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를 알아갈수록 당신도 그가 가진 사고의 우아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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