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욱 Aug 15. 2017

꾸준함에 대하여

마사지받다가 필 받아 쓰는 이야기


근육이 정말 많으시네요?

오랜만에 들른 마사지샵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마사지사는 매번 달라지는 게 일반적인데, 대부분 조용히 마사지만 할 뿐 대화 시도는 거의 없는 곳이다.


"운동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제가 그다지 근육 많은 스타일은 아닐 텐데요"


사실 그랬다. 타고난 체형이 슬림한 데다가 살도 단단하기보다 무른 편이다. 운동신경이 없진 않지만, 운동효과는 매우 더디게 나타는 유형이다. 누군가는 매일같이 하는 체성분 측정도 결과가 나아지는 게 없어 1년에 한 번 할까 말 까다.


"그래도 여기 오시는 남자분들 중에서는 가장 많으세요"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 남자 손님은 도대체 몇 명일까' '오픈한 지 1년쯤 된 곳이니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그래도 여기가 이름은 있는 곳이니 아주 적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여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어' '사실 여기서 한 번도 남자를 본 적은 없잖아'


짧은 시간에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상상했지만, 결국 '몇 명의 남자 중에 내가 가장 근육이 많은 지'에 대해 되물어 보지는 않았다. 정말 궁금했지만 만약 그녀가 혹시라도 "2명이요"라고 대답했을 때의 당혹감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때론 호기심은 행복의 적일 거라고 위안하면서.






뭐 이런 변태 같은 운동이 다 있어

처음 크로스핏을 체험하고 나서 저절로 이 말이 나왔다. 그다음 날은 종아리에 쥐가 나기까지 했다. 이전까지 꾸준히 달리기를 했었기에 기초체력은 웬만큼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뭐 그냥 다른 세계다. 운동 능력으로 보면 그나마 심폐 지구력만 괜찮았던 것이지 나머지는 말짱 꽝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벌써 5년이 지났다. 부상으로 1년 가까이 운동을 쉬는 기간이 있었지만 이만하면 그래도 꾸준히 해 온 셈이다. 운동을 위해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재미가 있었다. 몸을 쓰면서 땀을 흘리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도 리셋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운동을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근육은 원했지만, 보이기 위한 근육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근육남 얘기를 들으니 내가 스스로에게 의아한 생각이 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안다. 그것이 아름다운 외모 건, 뛰어난 재능이건, 뭐든 간에. 그리고 살아오면서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한 칭찬을 받아본 기억은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없는 것, 또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어라 이런 건 처음인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잘하는 게 전혀 아니었는데, 좋아서 또는 필요해서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뭔가 달라져 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은 이거 같은데, 그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짝 틀어놓은 느낌이랄까. 애초에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꾸준한 노력만으로 뛰어난 재능을 넘기는 어렵다. 애초에 보면 느낌이 온다. 운동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세와 테크닉이 엉망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도 일부는 두어 달만 지나면 나보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 예상은 거의 정확하다. 그러면 나의 5년과 그 사람의 2개월을 비교하게 되면서 잠시나마 허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도 사이클이 있고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그런 재능들과 경쟁하는 것이 버거울지 모르겠지만 결국 누가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능의 위력은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겠지만, 꾸준함은 일관성 있게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어떤 일에서 재능이 부족함에도 본인이 꾸준히 해 나갈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런 꾸준함이 실제 자신에게도 존재하는 지를 아는 것도 일단 부딪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일에 대한 진심 어린 열망이 있다면, 또는 내 인생에서 꽤나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면,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다는 믿음.


그 과정에서 적정 수준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꽤나 중요하다. 모멘텀이 너무 강하면 지치기 쉽고, 너무 약하면 흥미를 잃는다. 때론 빠르고 강하게, 그리고 때론 느릿느릿 약하게 해 보면서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보자. 그 리듬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꾸준함이라는 기계는 저절로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봤을 때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보며 놀랄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마사지 샵의 남자 손님이 2명뿐이면 어떤가? (차마 나 하나뿐인 상황은 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부족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꾸준함이라는 무기가 있고 10년, 20년 뒤 결과는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애덤 스미스의 우아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