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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Sep 30. 2017

저도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깊은 울림이 있는 교토만의 정서

주말을 끼고 교토에 다녀왔다. 연차를 하루라도 아껴보려는 마음에, 연휴에 걸쳐가는 여행을 생각해봤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일정을 앞당기다 보니 연휴보다 1주일이나 앞서 다녀오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중국 국경절이라는 폭풍을 피한 괜찮은 결정이었다. 교토의 차분함과 단정함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었달까.


일 년에도 여러 번 출장을 가는 도쿄와는 달리, 교토는 처음이었다. 새로운 도시를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그곳의 상징적인 건물이나 오래된 맛집, 그리고 새로 생겨난 힙한 공간들을 찾게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공간의 하드웨어적 요소보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 무엇보다 그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어떤 것 일가에 대한 물음. 멋지고 예쁨을 넘어 그곳에서만 느껴지는 향기는 어디서 오게 된 것일까 하는 호기심.


평생을 같이 살아도 사람 하나 제대로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을진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를 첫 방문에서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건 과한 바람이다. 그러나 때마침 나와준 임경선 작가님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그야말로 이번 여행의 구세주였다. 론리플래닛처럼 모든 도시의 모든 것을 펼쳐 보여주지는 않지만, 교토를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가 "나는 교토의 이 부분이 참 좋았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임 작가님도 몇 차례 방문 이후부터 교토에 대해 본격적으로 덕질을 했다고 언급했는데, 그 덕심이 어떤 것인지 첫 방문부터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꽤나 풍요로운 여행이 되었다.


교토 정서에는 무엇보다 '기품'을 빼놓을 수 없다. 


유서 깊은 교토에서는 유난히 기모노를 차려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경복궁에서 처럼 여행객들의 기모노 체험도 많지만 현지인들이 일상복으로 입고 있는 비율도 높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인이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멀리 서봐도 기모노의 색감과 질감이 좋아 보였고, 허리를 묶은 오비는 구김 하나 없이 빳빳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자에 기대지 않고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는 자세와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품에 나와 아내는 압도당했다. 그녀의 절제된 기품이 내뿜는 아우라에 넋을 잃었다. 나이와 외모로만으로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른 아침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호텔 로비에 대기 중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여행 가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전혀 그렇게 생각지 못한 것은 '교토 가이드를 위해 이 옷을 입었다'라기보다 '이게 교토다'라는 태도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어디에 가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 모르지만, 나도 그 투어에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다가왔던 건 '배웅'의 정서다. 

임작가님의 책에 보면 교토에서는 자신이 접대한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고 또 한다는 '교토 오모테나시(대접)'가 있다고 한다. 도쿄에서도 기업체를 방문하고 미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힐 때까지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그런데 교토의 응대는 그보다 더하는 말인가.


유서 깊은 식당이나 숙소를 이용하지 않아 교토 오모테나시를 경험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쇼핑몰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발견하고는 신나게 옷을 구경하고 있는데, 일본인인 줄 알았던 점원이 알고 보니 한국인이 아닌가 (그녀는 이미 9년째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결국 외투 한 벌을 사서 나오게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쇼핑백에 담은 제품을 계산대가 아닌 매장 입구 밖까지 함께 나온 후에야 전해주는데, 그게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같은 층을 한 바퀴 돌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조금 전 매장을 바라보니 그분이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전통 식당이 아닌 쇼핑몰에서, 그것도 한국인에게 '교토식 배웅'을 받은 건 다소 이질적이긴 했지만, 그 정서는 교토 어느 곳이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배어있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교토의 정서는 '협력'이었다. 

교토는 크지 않은 도시지만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모습이 많았다. 교토를 대표하는 노포의 후손들이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는 '가이카도 카페'. (숙소 근처였지만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고 버터 얹은 식빵, 요구르트와 커피로 구성된 조식이 맛있는 '히비 카페'에도 지역행사의 홍보물과 함께 주변 가게들의 전단지도 손님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에 비치해 두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카페와 식당들이 주변 가게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홍보해 준다.



거시적으로 보면 크지 않은 교토에 항상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뜻 봐도 공급보다는 수요가 넘치는 곳이니 굳이 심하게 경쟁하지 않더라도 적당히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딘들 장사에 경쟁 없이도 그냥 잘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잘되면 잘되는 대로 더 키우려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던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에 거대 자본이 아닌, 역사가 있고, 개개인의 개성을 담은 가게들이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교토에서는 적어도 어떤 '특색'을 갖추는 것이 가게를 하는 '최소 요건'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미시적으로는 그 최소 요건을 넘어 나만의 것으로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만 남을 인정하고 도우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연대하고 돕는 관계. 이런 문화를 유지하고 지켜온 것이야 말로 교 토인의 또 다른 자부심이라는 생각이다.


3박 4일 동안 참 열심히 다닌 것 같은데 게이분샤 이치조점 등의 서점, 그리고 전통 있는 카페들과 식당들, 그리고 사찰들까지, 아직 미지의 교토를 너무 많이 남겨놓고 오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교토라는 곳은 바쁘게 방점을 찍으며 돌아다니기보다는, 그저 기회 될 때마다 골목골목 천천히 음미하며 알아가는 게 더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지만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교토 라이프'는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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