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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Jan 21. 2018

알고리즘 시대에서 액티브 투자자의 고민

<인공지능 투자자 퀀트>를 읽고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투자자가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의 투자 관련 정보 접근성도 크게 향상되고 있고, 규제 강화로 기존 제도권 투자자들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하는 등 절대적인 정보 우위를 점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일반 액티브 펀드의 시대는 가고, 비용이 저렴한 패시브 펀드와 투자 프로세스가 명확한 퀀트펀드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 거대한 운용자산과 이를 통한 압도적 정보 접근성을 바탕으로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을 풍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대형 운용사들은 느리고 굼뜨며 창의적이지 못한 집단이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정체된 시장지수를 그저 트래킹 하는 고루한 펀드에 대한 고객들의 실망, 그리고 그 가운데 젊고 날렵한 조직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작지만 강한 회사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 또한 무언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지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확실치 않았다.


미국에서 초단타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가 이슈가 되고 , 2014년 이에 관한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보이즈>가 나왔을 때만 해도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사실 과거 퀀트책은 지나치게 'nerdy'한 면이 있어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권용진 씨의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는 그 어떤 전문가의 글보다 흥미롭다. 메릴린치에서 직접 일하며 진행한 프로젝트 얘기들이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재미있었고, 또 그 가운데 글로벌 투자 트렌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실감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책 초반의 금융시장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부분임에도 정독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토리텔링에 능한 퀀트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귀하다.


미국에서는 시타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등의 알고리즘 기반 헷지펀드가 시장을 지배한 지 오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전략들은 미국에서 이미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경쟁이 심하고 포화된 시장으로 여겨질 정도다. 미국의 시장은 벌써 이만큼 왔는데 한국의 시장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글로벌 알고리즘 투자회사는 이미 한국의 증권시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까? (선물옵션시장은 충분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투자회사들은 어디까지 알고리즘 투자를 활용하고 있을까?


펀더멘털 기반의 투자자로서 알고리즘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이들에게 피해를 보고 싶지 않다. 기관투자자들은 대개 CD(일정한 시간주기로 주식을 매매하는 것) 방식을 통해 주식을 매매하는데, 이는  알고리즘에 의해 가장 쉽게 파악이 되는 매매행태일 것이다. 책에 따르면 VWAP 마저도 알고리즘에 의해 파악당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미국의 대형 운용사들은 알고리즘에 의한 거래비용 증가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크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유의해야 할 요소다.


둘째, 더 나은 정보처리 프로세스를 만들고 싶다. 일반적인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시장의 패턴이나 가격의 왜곡을 이용한 단기 트레이딩 전략이라면, 펀더멘털 투자자는 회사의 중장기 가치 상승을 믿고 보유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면서 아무리 깊이 분석하더라도 한 회사를 둘러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요인들을 다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기 가치투자를 하더라도 기존보다 변화의 흐름을 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또한 기존의 한정된 정보보다 다양한 관점의 정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더 이상 한 사람의 일상적인 정보수집 및 처리능력에 바탕한 판단만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세상은 너무 빠르고 복잡하다.


위성사진을 통해 파악한 주차대수로 유통업체의 매출을 추정한다던가, 석유/가스 재고량을 파악하는 등의 서비스 업체는 이미 미국에서 수요가 치솟고 있다.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 동시에 남들이 활용하지 않고 있는 수단을 이용해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앞으로 펀더멘털 기반의 액티브 매니저들도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알고리즘은 점점 더 AI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편 AI가 인간의 판단능력을 완벽하게 넘어서는 순간(특이점)까지는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남들이 정량화하지 못하는 정보를 데이터화 하는 투자자와 그렇지 못한 투자자 간의 차이는 심화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어 처리'에 가장 관심이 간다. 매일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뉴스를 읽지만, 세상의 모든 걸 읽고 소화할 수는 없다. 최근엔 증권사와 언론이 아닌 SNS와 블로그, 그리고 유료 콘텐츠 제공회사 등에서 더 가치 있는 정보들이 많은 경우가 많다. (실제 트럼프의 트위터 내용을 분석하여 투자에 활용하는 펀드도 있다) 이런 내용들을 자연어 처리를 통해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이는 장기성향의 액티브펀드와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큰 무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어의 경우 영어에 비해 자연어 처리가 상당히 어렵고 데이터 또한 질과 양에서 부족해서 애로점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화된 투자 세계에서 한국어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자연어 처리가 투자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어떻게 나의 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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