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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Mar 25. 2018

보이지 않는 위기에 대처하는 법

블랙스완에서 진화한 '회색 코뿔소'에 대한 생각  

많은 사람들이 나심탈레브의 <블랙스완>이나 <행운에 속지마라>라는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주장에 상당히 동의하고 있다.  복잡한 세상에서 롱테일 리스크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성과'란 상당부분 '운'에 의해 작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가 있고,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이 뭔가? So What? 그래서 우리의 행동도 변해야 한다고? 이미 단기간의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 따라 신중하고 절제된 선택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나의 비판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보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의 저자인 미셸 부커는 블랙스완은 예측하기 힘든 것이니 회색코뿔소를 조심하자고 한다. 여기서 회색코뿔소는 개연성이 높고 거대한 충격을 일으키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위험을 뜻한다. 즉, 알면서도 귀찮아서 대비하지 않거나, 아니면 '설마'라며 애써 무시한 위험을 의미한다. 블랙스완과 달리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대응이 가능한 위험이다.


지나고 보면 '대응 가능한 위험'이었지만, 현실 속에서 진짜 대응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대응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들이 신호인지 소음인지를 구별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난제다. 당장 일어나지 않을 일을 위해 내 루틴을 벗어나 에너지를 쏟기는 어렵다. 회색 코뿔소 비슷한 것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에 대한 대응을 한 개인의 의지력에 의존하는 건 어쩌다 가능할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예측 가능한 위험은 사전에 정기적 검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예방될 수 있다. 차의 주행거리가 1만 킬로에 도달하는 주말에 근처 카센터에서 엔진오일을 교체한다거나, 1년에 한 번 정해진 날에 스케일링을 받고 건강검진을 받는다. 투자회사라면 피터린치가 말한 대로 보유종목에 대한 '6개월 정기점검'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등 인생과 직업에서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정기적 점검절차'를 마련한다면, 관련 위험에 대한 방지 노력은 최소화하면서도 충분한 예방능력을 갖출 수 있다. 미리 생각하고 정해두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지만, 미리 생각하고 정해둔 일을 하는 건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회색코뿔소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정기적 점검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위험에 관한 일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가 커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위험이라는 것은 그 본질적 특성상 다수가 아닌 소수의 예측일 수밖에 없다. 회사나 조직의 리더라면 그 위험을 조기에 간파하고 대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건 결국 구성원의 다양성과 원활한 의사소통 경로, 그리고 그것이 충분한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까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고 그래야 그중에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설사 위험을 감지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조직 내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의 목소리가 실제로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길은 험난하다. 그리고 위험 경고자들에게 "당신이 위험성을 언급했으니, 그걸 설득하고 책임지는 것도 당신의 몫이다"라고 말하는 문화도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렇게 까지 책임지면서 경고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개연성 높은 위험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면 그의 동료나 관리자가 적극적인 확성기 역할을 하고, 리더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위험에 대한 대응이 적절히 이루어졌을 경우에 대한 보상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실제로 아무 위험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일어난 위험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었던 위험을 대비한 것만으로도 관련자에게 충분히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위험의 종류에 따라 리더와 관리자의 대응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개연성 높은 위험이 리더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우라면 그 위험은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대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험이 리더를 포함한 기득권의 단기적 이해관계와 반하는 경우는 다르다. 코닥처럼 디지털카메라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것, 이는 실제 경영진들이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으나 기존 사업을 축소하고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기득권(경영진)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또한 대부분의 위험은 대비하는 비용은 즉각적으로 나타 되지만, 그 효익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발생하므로 대응에 소극적이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회색 코뿔소의 위험에 대비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과는 별개로 현실에서의 위험 대비는 조직의 다양성과 경영진의 수용의지,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문화가 충족되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위험을 감지하는 뛰어난 구성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위험에 대한 대응을 결정하는 경영진의 이해관계와 합치되지 않으면 실제 실행은 어렵다는 점이다. 인간은 옳고 그름이나 정당성 같은 대의보다는 욕망에 더 쉽게 움직인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고 설득하는 일은 의미있다. 하지만 화재가 아니라면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답은 아니다. (불신지옥 예수천당 확성기 듣고 개종하신분?) 그보다 회색 코뿔소가 당신의 리더에게 얼마나 큰 개인적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단서만 던져준다면 의외로 그는 쉽게 움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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