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5월에 토스에서 수습기간을 마치고 적은 Medium 글을 번역해서 뒤늦게 올리는 글입니다 (원문). 제가 합류한 팀이 "토스증권"으로 바뀌었고, 2021년 4월에 퇴사를 했기에 지금은 많은게 다를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수습 기간을 통과했는데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보냈던 3달이었다. 마치 올스타전에 잘못 나온 아마추어가 (혹은 세미프로..?) 된 느낌이 들었다. 많은 것을 겪었기 때문에 수습 기간이 어땠는지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수습 기간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4개월을 되돌려보면 아직 코로나바이러스가 심각하지 않았던 2020년 1월이었고 토스에서 오퍼를 받은 상황이었다. 한창 여러 회사들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북미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서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포지션에 지원할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퍼 레터가 담긴 이메일에 답장을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구직 활동을 시작할때부터 토스는 정말 매력적인 곳으로 보였다. 200명 미만의 직원으로 4년만에 국내 최초로 유니콘이 된 핀테크 기업이다. 1년 뒤에는 기업가치가 2배로 뛰면서 2조를 넘어섰다. 이 숫자들은 인상적이지만, 내가 잡아야 할 완벽한 기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첫 이직이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시간을 더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리쿠르터분과의 마지막 통화로 인해 오퍼를 수락하게 되었다. 팀이 (인턴을 제외하고) 2년 경력을 가진 사람에게 오퍼를 준 것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을 들었다. 게다가 내가 지원한 서버 개발자 직군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통화 말미에는 이 기회가 내가 크게 성장할 수 있고 금융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단한 기회임을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 당연히 다른 팀들은 다른 채용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에 나오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저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미국 인턴을 포함해서 거의 4년 경력이 있는 나는 토스에 지원하기 전에 스스로 경험이 좀 있는 주니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에 오기전에 캐나다 최고의 테크 회사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Wealthsimple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아직 배울게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습 기간을 통과하는건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알고보니 자신감만 터무니 없이 높았다는 걸 깨달았다. 첫 2주가 지나고나서 팀의 기대치에 맞추려면 앞으로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내가 일했던 모든 회사에선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가진 개발자들이 항상 있었다. 주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거나 업무적인 조언을 구할때 부르는 개발자들이다. 흔히 10x 개발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내 팀에 있는 개발자들은 다 이런 사람들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모두가 열심히 그리고 오래 일한다는 것이다. 합류 전에 리쿠르터분이 말했듯이 많이 배울 수 있는 엄청난 기회다. 이 말은 나도 그만큼 빨리 배우고 1인분을 해내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토스의 핵심가치 하나는 "go the extra mile"인데 첫 1마일이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우는 것 같았다. 이력서에 적힌 경력에서 나름 넓은 지식을 얻었다 생각했는데 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깊이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이룬 것들이 아주 미미해 보였다. 이 순간부터 엄청난 peer pressure가 (네이버에는 또래압력이라 나오는데 어색하다) 밀려왔다.
수습기간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많이 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이 팀에 있을만한 사람인지 의심이 들었다. 한참 자기 비판에 휩싸였을때 첫번째 리뷰가 있었다.
리뷰는 내가 예상한 것 만큼 나쁘진 않았다. 익명으로 수집된 팀원들의 리뷰는 솔직하고 건설적이었다. 꼼꼼한 리뷰를 주기 위해서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번째 리뷰의 요점은 a)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b) 팀과 회사에 도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나만의 기준치를 잘못 잡고 있었기 때문에 a)를 보고 조금 놀랐다. 입사한 날부터 다른 개발자들 만큼 빨리 잘해야겠다는 착각을 했다. 사실 3달 만에 시니어 개발자가 되라고 뽑힌게 아닌데 peer pressure로 인해 그런 착각이 생겼다. 그 때는 압박감이 괴롭혔지만 결국엔 잘 지내온 것 같다. 이 리뷰덕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줬고 더 열심히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b)는 토스 문화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까"라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토스다운 방식이 아니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 챌린지를 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싸우자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입사한지 한 달이 된 사람인지 창립 멤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느꼈다. 챌린지를 포함해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전에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조심스러웠다.
대체적으로 첫번째 리뷰는 도움이 많이 됐다. 위로도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줬다. 이 시기가 수습기간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회사에 소속감을 갖기 시작했다.
수습기간 마지막 달에 접어들면서 업무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북미라면 각기 다른 핀테크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토스 앱 하나에 담겨있다 (Venmo, Credit Karma, Mint). 모든 서비스들을 지원하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것에 많은 일들이 이뤄지고있다.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게 대단하게 보였다. 채용 페이지에 그릿 (Grit) 넘치는 인재라 적혀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적은 걸 보면 토스가 혹독한 곳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회사에선 심리적 안정감에 대해 많은 중점을 두고있다. 자유와 책임의 문화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관료주의와 사내 정치가 만연하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토스에서 말하는 핵심가치들이 실제로 통할 줄은 몰랐다. 이 곳도 다른 한국 회사들과 다를바 없을까봐 걱정했다. 역시나 이 부분도 내가 잘못 생각한 부분 중 하나였다. 모든 구성원이 한국에서 매우 드물다 느껴지는 문화를 유지하고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래서 수습기간의 리뷰 과정에 사내 문화와 관련된 평가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 문화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핵심가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일하는 걸 즐기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첫 출근하고 3달이 다 되갈때쯤에 문화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핵심가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여기에 잘 나와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리뷰도 잘 넘겼고 수습기간을 통과했다 . 솔직하게 말하면 전 과정이 힘들었고 잘하고 있는지 헷갈렸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토스가 일하기에 알맞는 곳인지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만큼 이 절차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 시간과 노력을 쏟고싶은 회사에 합류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