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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L Oct 19. 2021

또 회사를 그만뒀다

⚠️ 제가 Medium에 적은 글을 약간 수정하고 번역을 거쳐 올린 글입니다 (원문: https://medium.com/@yunkee/i-quit-my-job-again-78fb34599b8c)


올해가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세 번이나 이직을 했다. 여러 번의 이직 끝에 지금 내 커리어에서는 어떤 회사 문화가 가장 잘 맞는 것인지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첫 번째로 입사한 회사인 토스는 일하기에 너무 좋은 곳으로 보였다. 다른 곳에선 찾을 수 없는 엄청난 조직 문화와 금융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비전, 그리고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일하기 좋은 동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의 (혹은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들이 내세울법한 복지와 혜택도 있다. 이쯤 되면 이렇게 좋은 회사를 왜 그만뒀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토스 입사 선물


토스증권에서 20명이 채 안 되는 개발자들과 함께 흔히 MTS라 일컫는 새로운 주식 거래 플랫폼 런칭을 준비 중이었다. 그동안, 동료 압박과 (peer pressure) 북미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업무량에 둘러싸였다. 아무도 내게 일을 많이 하라고 지시하거나 부탁한 사람은 없었지만, 토스 특유의 업무 환경과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몰입이 자연스럽게 나를 한계로 몰아붙였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일했던 곳들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었고 입사한 지 1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선택했다. 복직일 직전까지도 퇴사와 복직을 계속 고민하다 결국엔 퇴사를 선택했다. 역삼역으로 출근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건강 회복에 신경 쓰고 있다.

원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토스 내에서 내가 오래 혹은 많이 일한 사람에 속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캐나다/미국의 업무 환경과 상당히 달랐던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업무 강도에 이미 익숙했거나 자기 관리를 더 잘했다면 더 오래 다녔을지도 모른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개발자로서 빠르게 성장했고, 이력서에 토스증권이 적혀있는 것이 다른 회사들과 면접을 보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더 큰 규모의 테크 회사 혹은 '네카라쿠배'로 이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런 회사들의 업무 환경이 합리적인 삶과 일의 균형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면접관들이 왜 1년 만에 토스를 떠났는지 질문을 했고 이 글에 적힌 대로 솔직히 답변했다. 이는 회사 밖의 삶에 가치를 두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는 문화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회사의 오퍼를 꼼꼼히 따져본 후, '배달의 민족'을 개발하는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했다. 6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과 회사 내에 조직 문화를 담당하는 직군이 있다는 것에 이끌렸다. 면접 과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로웠고 면접 내내 나의 커리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줬다. 다양한 회사들과 면접을 봤었는데 이 정도로 면접자로서 면접이 만족스러웠던 적은 손에 꼽는다. 결과적으로 면접관과 우아한형제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회사 문화가 일하기에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 오퍼를 수락했다. 하지만, '규율 위의 자율'이라는 회사의 핵심 원칙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자율성이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규모가 큰 회사를 목표로 삼았지만 동시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율성을 원하는 상황이 역설적이었고 나는 이 점을 간과했다.


우아한형제들 입사 선물


동시에 지원을 했지만, 면접을 봤던 곳들 중 한 곳은 채용 과정이 조금 길어졌고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진행되었다. 예전에는 한 곳의 오퍼를 수락하면 진행 중인 다른 면접들을 모두 취소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스타트업의 문화를 가진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페이의 인사팀으로부터 쿠팡페이는 출범한 지 1년 여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스타트업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내 커리어를 고려해 봤을 때 또 다른 핀테크 스타트업의 시니어 개발자 직군의 오퍼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아한형제들에 입사한 지 3주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내가 이직을 선택한 쿠팡페이의 팀은 2,500만 명에 달하는 쿠팡의 MAU들의 모든 결제를 담당하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이었다. 많은 트래픽을 가진 핀테크 플랫폼을 개발한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기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팀원들과 일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곳이 정말 내게 맞는 곳인지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쿠팡페이는 대기업보단 스타트업에 더 가깝긴 하지만, 모회사인 쿠팡에 비교할 때에만 그런 것 같았다. 토스와 그전에 다녔던 스타트업들과 비교했을 때는 나에게 쿠팡페이는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가지에 집중을 덜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이 그리웠다.


쿠팡페이 입사 선물


몇 주 후에 여행업계의 다른 회사의 인사팀에서 연락이 와서는 CTO와 커피챗을 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새로운 회사를 알아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개발 조직이 일하는 방식과 코로나 상황에서 회사가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커피챗에서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회사의 문화와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명해줬을 뿐만 아니라 큰 회사가 잘 맞지 않는다는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공감해줬다. 한국에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회사가 피봇을 얼마나 빠르게 했는지, 그리고 투자 유치까지 이뤄낸 얘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가 마침내 내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오퍼를 수락하고 마이리얼트립에 합류하게 되었다.


마이리얼트립 입사 선물


취업 시장에서 다양한 기회들을 알아본 지난 4개월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10여 개의 회사들과의 면접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한국 테크 회사들은 지원자들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외우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x 프레임워크에 y 기능이 무엇인가요"로 이어지는 많은 질문들은 실망스러웠다. 긴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의 입장에서 회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 단 며칠이라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문화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분명 누군가는 내가 퇴사를 성급히 결정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각각의 회사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마이리얼트립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지 그리고 이곳이 내 커리어에 가장 적합한 곳인지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넓은 범위의 책임을 가지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내 업무가 제품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많은 면접을 보고 여러 회사에서 시간을 보낸 가치가 있었다. 여행이 멈춘 코로나 상황에 상관없이,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회사에 합류하게 되어 기쁘고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회사가 얼마나 빨리 더 성장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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