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L Nov 27. 2021

외국에선 이렇게 일했었는데,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

샌프란시스코 인턴 시절과 토론토 주니어 시절을 돌이켜보면, 성장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를 막론하고 매니저들은 1-on-1 미팅에서 내가 어느 분야를 더 배우고 싶은지 혹은 본인들이 나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항상 물어봤다. 스스로 성장 계획을 세워야 했고 얼마나 잘 실행되었는지가 개인 평가에 반영되었다. 4개월짜리 인턴 개발자, 시니어 개발자, 심지어 매니저들도 전부 같은 체계 안에서 자신의 성장을 관리했다. 자세한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캐나다와 미국에서 경험했던 회사들은 모두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업무의 일부분이었지만 2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많이 달랐다.


Development Plan

한국에 와서는 단 한 번도 작성해본 적 없는, 개인의 성장 계획을 적은 문서다. 내가 성장하고 싶은 방향을 정한 뒤 분기 혹은 반기별 목표를 적는다. 세부 목표는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연결되기 때문에 초안 작성부터 팀 리드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대부분 팀 리드가 프로젝트를 정해줬기에 주어진 업무에서 기술적으로 더 깊게 파고 싶은 점들을 나열했다. 개인적으로 시니어 개발자 트랙보단 팀 리드 트랙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개발 외적인 목표들도 적었다. 분기/반기가 지난 뒤 팀 리드와 문서를 검토하고 다음 목표를 정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같은 문서를 계속 수정하는 형식이다.


문서 작성 방식은 다양하지만 나는 주로 SMART (Specific, Measurable, Achievable, Relevant) 목표를 사용했다. 내가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에서 어떤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그리고 내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문서만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기마다 성과 평가를 했던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성장 계획 문서와 동료 피드백만으로 평가가 빠르게 끝났다. 평가 주기보다 짧은 호흡으로 내가 잘하는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팀 리드와 검토하기 때문에 평가 결과에서 내가 예상 못한 내용은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면 그걸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친 것과 같다.


1-on-1

지금 1-on-1을 장려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경험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주기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미팅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다. 인턴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년간 해온 1-on-1들을 되돌아봤을 때 효율적인 1-on-1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팀 리드와의 신뢰 형성

성장 계획 작성 및 리뷰

프로젝트 및 회사의 목표 논의

팀/업무 만족도 공유


팀 합류 초기에는 신뢰 형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다른 팀원들 앞에서는 선뜻 말하지 못할 내용이어도 1-on-1에서 만큼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후 대부분은 내 목표와 성장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더 경험해보고 싶은 분야를 공유하고 내가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development plan을 작성했다. 1 ~ 2주에 한 번씩 문서에 적힌 내용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on-1에서 피드백은 항상 양방향으로 주고받았다. 팀원의 입장에서 전달하는 피드백은 팀 리드에 대한 것이 될 수도, 혹은 팀과 조직 전체에 대한 피드백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느끼는 업무 만족도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도 피드백의 일부였다. 개발 외적인 부분에서 회사 생활에 방해가 되고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것들도 자유롭게 얘기했다. 1-on-1이 아니어도 확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 상세 일정이나 당장 해야 할 업무 보고와 같은 내용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회사가 달라도 팀원의 위치에서 참여하는 1-on-1의 주도권은 팀원이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일했다. 이 말은 팀원이 1-on-1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1-on-1의 주기나 전체적인 구조는 팀 리드가 정할 수 있겠지만 1-on-1은 온전히 참여하는 팀원을 위한 시간이다.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할지 미팅 전에 짧게 문서로 정리하고 적은 내용을 따라가면서 1-on-1을 진행했다. 같은 문서에 (질문이 있었다면) 답변과 피드백을 기록했다. 위에서도 언급한 development plan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경우에는 당연히 해당 문서를 수정했다.


끝으로

위 두 개 장치 없이도 피드백을 주고받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일한 곳이 이런 체계 없이도 밀도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 성장의 방향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성장 계획을 정리하는 단계가 회사 내에 있었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성장"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많은 글들은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연결되어있다 말한다. 그렇다면 조직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는 게 맞는 수순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어진 업무를 해내는 것이 성장에 필요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혁신의 속도를 중요시하는 많은 테크 회사들이 왜 이런 체계에 시간을 쏟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또 회사를 그만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