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raSue Mar 24. 2023

크리스마스를 만든 사나이

[영화 리뷰 -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스포일러 있습니다*




너무 진부하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크리스마스에 꼭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본다.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현재-과거-미래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깨닫고 새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왜 매번 볼 때마다 감동을 주는지 모르겠다.


같은 스토리를 어떻게 각색해내는가를 보는 것도 다양한 '크리스마스 캐롤' 을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2차소설 등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이야기를 작가인 찰스 디킨스를 등장시켜 풀어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찰스 디킨스는 정말 유명한 영국의 작가이지만, 사실 그가 쓴 작품 외에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영국 (천재) 작가, 살아 있을때도 유명했던 작가 라고만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디킨스가 어떻게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부터 시작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디킨스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 (혹은 최악일 때) 이 두고두고 유명한 소설이 탄생한다.


디킨스는 받아야 할 돈도 여기저기서 못 받고, 책도 실패(?) 하고, 부양해야 하는 가족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야심작인 새로 집필중인 '크리스마스 책' 에 대한 출판사의 반응도 미지근하자 차라리 대담하게 자신이 직접 투자해서 책을 내기로 한다. 이율 높게 돈도 빌리고, 비싼 그림작가도 고용하면서 거의 도박이나 다름 없는 새 책 출판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책은 크리스마스 책이니, 크리스마스 전에 배포를 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인쇄 등이 11월에 되어야 하고...결국 책을 6주만에 써야 하는 급박하고 초조한 상황에 몰린다.


괜찮은 소설이라고 자신하고 과감히 투자를 결심할 만큼, 디킨스는 이미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만났고, 어느정도 플롯도 짜놨다. 디킨스는 캐릭터에 완벽한 이름이 부여될 때, 그 캐릭터가 눈앞에 나타난다라고 했다. 디킨스가 스크루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스크루지는 그의 서재에 와서 디킨스와 크리스마스에 대해 토론을 펼친다. 다른 캐릭터들도 그렇게 하나하나 등장해 나가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흥미로운 포인트는 서재에 나타난 상상의 인물들이 아니라, 디킨스의 삶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과의 그의 관계였다.





작가인 만큼 디킨스는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집에서 뭔가 서재에서 등장인물들과 이야기가 진행되려 하면 자꾸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방해하고, 집에 있는 가족들도 부담인데 심지어 부모님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디킨스의 소설은 스크루지가 현재, 과거의 유령을 만나고 나서 막혀버린다. 이제 스크루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스크루지같은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디킨스는 스크루지를 따라가다 결국 자신을 만난다. 너무나 큰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자신.

불쌍한 절름발이 소년이 죽어가든 말든 돈돈돈 만 세고 있는 스크루지같은 인간에게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디킨스 자신이 그러한 스크루지들을 만났었기 때문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파산하고 결국 어린 디킨스를 공장에 보냈었던 아버지,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의 혹독한 생활. 크리스마스는 일 안하고 놀려는 노동자의 핑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악덕 고용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

디킨스가 어린 시절에 그런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했다는 걸 나는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서야 어째서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영화에서 묘사되듯)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무료 강연을 하러 다니고 적선을 넉넉히 했는지 알았다.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인 것 같다.

디킨스는 어린시절의 공장으로 돌아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확인하고, 자신을 공장에 보냈던 아버지를 용서한 뒤에야 소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어째서 스크루지처럼 살면 안되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는 미래에 죽기 때문이다. 무덤에 들어갈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같은 어린 아이들을 혹사해서 돈을 잔뜩 번다 해도, 즐거운 추억이 없는 삶, 슬퍼해 줄 사람이 없는 장례식이 미래라면.

단 한푼도 가져가지 못할 부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절름발이 소년을 돕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디킨스는 상처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돕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디킨스의 소설이 감동적인 이유는, 디킨스가 상처입은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 - 상처입은 사람을 사랑으로 도와주자는 말에 진정성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 ; 크리스마스를 만든 사나이 이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전까지, 크리스마스는 비싼 선물을 주고 받는 것과 같은 상업화와 소비화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캐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크리스마스 날 자선 모금이 치솟았고, 비싼 선물이 아니라 사랑이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도 스크루지는 구두쇠의 대명사가 되었다.

진정성 있는 글의 힘, 소설의 힘, 이야기의 힘이란 그만큼 대단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