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글에서 한발 더 나아감 -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보내주기.
불꽃같은 이십대가 지나고, 서른이 넘어서 나는 차츰 내가 꿈꾸던 나의 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서른넷이 될때까지,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자아실현과 일치된 커리어, 안정적 재정상황, 그리고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는 나만의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서른 넷의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고, 드디어 안정적인 월급을 받아서 장기 경제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치열한 유럽의 주택난 속에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나의 스튜디오를 찾게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행복을 진정으로 누리기도 전에 그동안 내가 등한시(?)했던 다른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결혼 준비도 안하는건 좀 너무 한것 같기도 하고…이제 짝을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물론 좀 외롭기도 하고, 알콩달콩 연애하는 걸 보면 말이야.
20대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도 모든 것을 쉽게 시도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30대가 되면서는 이제 한정된 나의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쓰게 된다. 한마디로 내가 내키지 않으면 연애도 안한다는 말이다. 내 에너지를 소비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혼자 있는 시간보다 행복한가. 이 사람과 어느정도 미래가 보여서 좀 더 알아가는데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나는 혼자서도 하나도 심심하지 않고 친구들이랑 할 일도 많고 내가 비싼 월세내면서 포근하게 꾸민 집에서 뒹굴 거리는 게 너무 행복한 사람인데 그걸 다 이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아 나도 그런 저런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사랑하고 싶다!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미래가 보이고 보이지 않고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고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마나 눈이 높은 건지, 기본적으로 지금껏 타인을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나이들면 그런 열정적인 사랑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어려서도 그런 열정적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호감은 간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서 상대방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성향이 독립적이고 (유전 + 환경) 어렸을 때 사랑의 결핍이 없어서 그런지 굳이 사랑을 갈구 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짝꿍이라는 것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굳이 아쉽게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로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공식적으로 사귄걸로 치기도 애매한 짧은 연애들을 다 빼면 어느덧 솔로 9년차다.
뭐 이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냐! 솔로 9년차라니! 불안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라는 불안.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인가?
두번째로 그렇게 내가 매력이 없어서 ‘선택받지’ 못한건가, 하는 불안. 왜 아무도 내 짝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는거지? 내가 그렇게 못났나? 외모가 별로인가? 성격이 이상한가? 어떻게 더 예뻐져야 할까? 수술을 해야 할까?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까? 그때 그런 말을 해서 그 사람이 내가 싫어진 걸까? 나의 매력이 뭐가 부족할까?
세번째로 생체 시계에 대한 불안. 벌써 30중반을 넘어서는데, 과연 이대로 출산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딱히 애를 가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진 않았는데. 나는 선택지조차 없이 그냥 자연스레 비혼 미출산의 삶을 살게 되는걸까?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옳은 선택인가 하는 불안.
네번째로 정말로 사람들이 말하듯 나중에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를 놓쳐서’ 나는 영영 혼자 사는 걸까, 나중에서야 불쌍하고 찌질한, 외로운 1인 노년가구가 되는 것인가.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냐고.
그렇게 솔로라는 사실에 불안해하면서 나름 짝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지난 여행 후에야, 나는 짝이 없어서, 외로워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불안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상하고 불쌍한 노처녀가 아니라는 인정.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정. 결혼할 만한 사람이라는 인정. 한국 사회에서 소위 ‘성공’이라고 말하는 학위, 직업, 결혼의 허들을 다 점프한 성공한 여성이라는 인정. 무엇보다 결혼을 못해서 속상하게 하지 않는, ‘착하고 대견한 딸’이라는 인정을, 부모님께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나는 영원히 ‘그러면 뭐하냐, 결혼도 못하고 애도 없이 불쌍한데’ 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적어도 그런 말을 지금껏 나의 부모님, 나의 친척들, 주변 어른들에게 들어 왔다. 여자로서 '결혼'과 가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은연중의 생각. 내가 아무리 해외에서 커리어가 승승장구하더라도,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결혼 잘한’ 엄친딸 만큼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남편도 잘났고, 시댁에서 너무나 이뻐하고, 이번에 임신도 했다는 친구에 비하면 나는 무얼 하든, 불쌍하게 시집도 못 간 30대 노처녀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려면 초조해야 한다고 한다. 진심으로 결혼을 목표로 한다면 필사적으로 소개를 받고 선을 보고 그렇게 사람을 만나서 어떤 부분은 포기하고 그래도 결혼할 만한 사람이면 결혼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혀 초조하지가 않다. 내가 뭐가 못나서 연애를 못하고 결혼을 못할까 같은 자존감 낮은 생각을 하다가도, 뭐 사실 내가 그렇게 못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연애를 위한 연애, 결혼을 하기 위한 결혼은 전혀 할 생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 눈을 낮출 생각도 없다. 섣불리 결혼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생 끝에 이혼하고 싶지도 않다.
애를 낳을 것만 아니라면 어거지로라도 빨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여전히 자만추가 좋다. 비혼, 딩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과 아이가 로망인 것도, 평생의 소원인 것도 아니다. 괜히 어설픈 관계 속에 휘말려서 또다른 트라우마만 계속해 만들기보다는, 테라피 받으면서 내면적으로 평화롭고 성숙해지는 솔로의 시기가 좋다. 하필 친구들도 솔로들이라 같이 놀러다니는 이 시기도 너무 행복하다. 외로움도 별로 두렵지 않고 (챙겨야 하는 귀찮음이 더 두려움) 나중에 늙어서 어쩌냐 하는 것도 세상이 바뀔것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은 사실 솔로인 것이 전혀 불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 탈출을 위해 노력하고 불안해 하는 이유는 결국 남 때문인 것이다.
남의 눈 때문에, 남의 인정 때문에, 남과의 비교 때문에.
나는 진작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국을 나왔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는 부모님을 포함한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긴, 거기서 놓여나는 것은 끊임없는 여정이다 .흔들리고, 다시 깨닫고, 흔들리고, 다시 깨닫고 하면서 이어지는 여정.
남이 불쌍하게 시집도 못 간 30대 노처녀라고 나를 평가한다면, 평가하라지. 어쩔수 없지. 안쓰럽게 얼마나 외로울까 나를 걱정해 준다면 그러라고 하지 뭐. 부모님에게, 친척들에게 참하고 자랑스러운 딸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어쩔수 없지, 그건 안타깝지만 나의 부모님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없는 불쌍한 여자라 해서 내가 정말 불쌍한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다 이상적인 남편감이라 해서 진짜로 나에게 이상적인 남편인 것도 아니고, 남들이 다 맞는 길이라 해서 정말로 그 길이 내 길인 것도 아니다.
남이 뭐라 하든, 어떻게 보든, 어떻게 살든, 나는 그냥 나를 행복하게 하는 내 삶을 사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드디어 나는 ‘짝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었다. 더 이상 죄책감도, 자기 의심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다. 무엇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나를 옭아매고 있던 무의식의 족쇄에서, 이제야 벗어난다.
나의 마음에 거칠 것이 하나도 없이, 나는 행복하게 서른 다섯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