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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Jul 05. 2023

3. 작은 상자

유자의 장례식날

유자는 설연휴가 시작되던 토요일 새벽에 떠났다. 밤새 유자의 곁을 지키느라 밤을 새다 시피 한 우리 가족은 유자의 마지막 숨을 함께 하고, 아주 잠깐 기절하듯 눈을 붙였다가, 아침에 유자를 보내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잠이 든 유자는 엄마, 오빠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작은 상자에 쏙 담기는 아주 가벼운 가루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 장례 경험이 많지 않다. 때문에 일반 장례식도 낯선데, 반려동물의 장례식은 더욱 그랬다. 반려동물 장례식은 사람의 장례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또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유자 등에 하트 모양의 태비 :) 사랑해 유자!

우리는 굳어버린 유자를 계속 쓰다듬으며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많이 멀지 않고, 후기도 좋은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수목장을 한 아이들의 영혼이 깃든 나무들이 가득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수의와 유골함 선택이었다. 화려하고 예쁜 수의도 많았지만, 유자는 생전 옷 입는 걸 끔찍히 싫어했다. 매일 두 번씩 약을 먹느라 담요로 김밥 마는 것도 미안했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까지 집사들 마음 편하자고 옷을 입히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나무, 예쁜 모양의 관도 많았지만, 역시 추가하지 않았다. 유자의 유골에 다른 것이 섞이는 것이 싫었다. 그저 유자와 마지막 인사를 잘 나누고,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었다. 

상담을 마치고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유자를 데리고 수습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유자의  사진을 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예쁜 꽃들 속에, 깨끗한 삼베 위에, 잠에 든 모습의 유자가 우리에게 왔다. 장례지도사분이 입가도 닦아주고 편안하게 눕혀주셨다. 사진을 보며 애써 웃음을 짓던 우리 가족은 유자를 마주하고 다시 눈물을 쏟았다. 꼭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것 같은 유자의 모습에 영원한 이별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던 콧대. 그 짧고 부드러운 털을 만져주며 금방이라도 배를 뒤집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것만 같은 유자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삼냥이 중 유자는 유독 털이 부드러워서, 집사들은 중독처럼 유자의 냥통수를 만지곤 했다. 이 부드러운 감촉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가 때 라떼와 떨어져서 밤새 지하실에서 울어대느라 쉬어버린, 유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목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다. 앙증맞은 발바닥도 한 번 더 만져보고, 보드러운 털도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는다. 한참을 울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장례지도사가 '이제 보내줄까요?'하고 물었을 때는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인사하고 떠난 유자


예상대로 몸집이 작은 유자는 말 그대로 한 줌의 가루로 남았다. 그 작고 고운 뼛가루를 마주하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의 예쁜 고양이 유자는 이제 완전히 고양이 별로 떠났다.


유자는 작은 상자에 담겨 집으로 돌아와왔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엄마는 '어디든 뿌려주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막상 유골함에 담긴 유자를 받아들고 나니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자연스럽게 우리는 상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라떼는 꼭 딸을 알아보는 것 처럼 한참 유골함의 냄새를 맡으며 서성였다. 율무는 그날부터 며칠을 밤마다 유자가 자주 올라가던 책장 위에 올라가 울었다. 집사도, 고양이들도 믿을 수 없는 이별이었다.


유자를 위한 공간


유자의 유골함은 거실 책장 가장 높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보이고 가까우면서도 유자가 좋아하던 자리에 두고 싶었다. 책장 꼭대기 칸은 높은 곳을 사랑하는 유자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 애정하던 장난감도 놓아주고, 예쁜 사진들도 두었다. 언제나 유자가 여기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라떼, 율무와 인사를 할 때 유자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책장을 올려다보며 잘 지냈는지 물으면, 책장 꼭대기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눈키스를 하던 유자 얼굴이 아른거린다. 유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걸 이렇게라도 느낄 수 있다는게, 큰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에는 감사하고 행복하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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