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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ug 02. 2023

4. 사진

너와 함께한 시간

라떼가 아기들을 막 낳았을 때, 태어난 지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은 말 그대로 갓난 아깽이 다섯 마리를 사진에 담았었다. (라떼는 밥을 챙겨주는 우리 가족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치즈 네 마리에 삼색이 하나. 그때는 그냥 뭉뚱그려 '귀여운 아깽이들'이었던 녀석들. 똑같이 생긴 치즈 고양이가 절대 다수라 누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아깽이들이 '내 새끼'가 되면서 우리 가족은 아깽이 때 사진만 봐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이마에 시그니처 태비가 그어진 채 카메라를 향해 인상을 쓰고 있는 유자는 몰라볼 수가 없다.


안녕:) 아가 유자




라떼와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이 된 건 2016년 7월 여름. 유자 율무가 약 3개월령일 때였다. 이미 성묘인 라떼의 어린시절은 보지 못 했지만, 율무와 유자는 3개월령부터의 성장 사진이 모두 남아있다. 유자가 떠나고 나서는 유독 작고 소중했던 유자의 아깽이 시절이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사진을 더 많이 찾아보곤 한다. 


아가 시절 율무는 낯을 가리느라 구석에서 나오지도 않고 잠만 자서 사진이 거의 없는 반면, 유자는 아직 사람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한 게 있거나 장난감을 발견하면 달려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아깽이 시절의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조그만 게 얼마나 입을 앙다물고 장난감을 향해 냥냥편치를 날려대는지 귀여워 죽겠다.


나는 맹수 어흥


유자의 사진을 다시 찾아보면서 아쉬운 게 있다면, 다름 아닌 화질이다. 요새 스마트폰은 DSLR 저리가라 하는 엄청난 화질을 자랑하지만, 불과 7년 전인 2016년에는 최신형 스마트폰의 카메라의 화질도 지금의 기준으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조금 더 선명하게 귀여운 유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속상함이 밀려온다. 예쁜 사진은 많은데, 모두 흐릿하다. 그 예쁨이 머릿속에서는 선명한데, 눈으로 보이는 게 흐릿하다.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니 인정한다. 유자가 커갈수록 사진도 더욱 선명해진다.


구조 직전, 엄마 사료도 몰래 씹어먹던 생후 3개월 유자의 흐릿한 뒷모습


엄마, 형제들과 사냥하는, 귀만 커다란 아깽이 유자


눈 못 뜨는 꼬물이 시절, 주먹만 하던 아깽이 시절을 지나 성묘가 되어도 아가같던 유자가 어느덧 7살 생일을 바라보게 될 때까지. 모든 순간 순간들이 가슴 속에 남아있지만, 그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사진들이 있기에 더욱 선명하다.

핸드폰 화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사랑스럽고 예쁜 아가때의 모습. 한때는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는데, 지금은 흐뭇하게 웃으며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따금씩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지만, 추억할 사진이 많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1살이 안 된 유자와, 라떼


6살의 유자와, 라떼


엄마 껌딱지였던 유자는 유독 엄마인 라떼와 붙어 있는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라떼도 유자가 아프다는 걸 알아서인지 좋아하는 자리에서 혼자 잘 때 유자가 꾸역꾸역 낑겨서 거의 라떼를 깔고 뭉개는 지경으로 귀찮게 해도 살뜰히 그루밍을 해주고, 아깽이처럼 엄마 꼬리를 잡고 놀거나 멱살을 잡는 하극상을 벌여도 최대한 참아주었다. 율무가 어리광을 부리며 머리를 부비면 가차없이 하악질이 발사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라떼의 올망졸망한 눈코입을 꼭 닮은 유자. 그런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했던 유자. 그래서인지 둘이 붙어있는 사진을 보다보면, 지금 비어있는 라떼의 옆자리가 너무나 허전하고 속상하게 느껴진다. 물론, 가끔 그 속상함을 이겨내보려고 라떼에게 말한다.

"다 큰 딸랑구가 독립도 안하고 들러 붙어서 우리 라떼 버거웠는데, 귀찮게 하는 딸랑구 없어서 편하지? "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낸 지금은 정말이지 혼자 두 다리 뻗고 자는 라떼가 편안해보이지만, 유자가 떠나고 한동안 라떼는 유독 율무를 끌어안고 붙어있었다. 유자가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무려 7년에 가까운 시간을 자기가 어디에 있던 쫓아와서 옆에 찰싹 달라붙던 껌딱지가 사라진 자리가, 라떼도 몹시 허전했던 것 같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했던가. 유자가 떠나고 나서 그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을 했다. 유자가 떠난 자리에 제일 크게 남은 건 유자와의 추억이 가득한 사진이다. 화질이 좋지 않아도, 흔들려도, 일명 망한 사진이어도, 상관없다. 좋지 않은 추억이란 없고, 망한 추억이란 없으니까.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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