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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May 06. 2021

San Fran 01. 셰어링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담았다는 건포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피부로 직접 캘리포니아 햇살을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러지. 당황스럽게도 나를 기다리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따뜻하고 반가운 포옹이 아니라 모든 걸 다 태워버리겠다는 집념에 가까운 강렬함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전에 없던 폭염이란다. 내 피부도 건포도처럼 까맣고 쭈글쭈글하게 말라비틀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늑장을 부리다가 강렬한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서야 트윈픽스 (Twin Peaks)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 시티 전망으로 유명한 산이다. 정상까지 드라이브웨이가 뚫려있어서 차를 타고 금세 다녀올 수 있다. 봉우리가 두 개이긴 하지만 어차피 같은 뷰일 텐데 굳이 두 정상 다 가볼 필요가 있을까.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둘 중 ‘유레카’라 불리는 북쪽 봉우리만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똑같이 멋진 뷰를 제공하는데도 한쪽이 아주 조금 더 낫다는 이유로 다른 하나는 잊혀진 것이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타들어갈  같던 동네가 언제 그랬냐는  쌀쌀해졌다. 어쩔  없이 무방비로 밤바람을 맞으며 샌프란시스코 시티 야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트윈픽스부터 항구까지 도시 중심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마켓 스트리트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건널 계획인 금문교, 외딴섬 알카트라즈에도 눈도장을 찍어놓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샌프란시스코 시내 쪽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내 반대편으로 향하는 우버에 올랐다. 뉴욕과 1,2등을 다투는 샌프란시스코의 물가 때문에 시내 중심에서 묵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시내 사이의 중간쯤 위치한 외곽에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교통이 편한 지역은 아니지만 우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물가가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탓에 여기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다른 도시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것보다  많은 숙박비를 아낄  있었다. 여행하면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이렇게까지나 유용했던 도시도 처음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버 셰어’라는 카풀 옵션을 시도해봤다. 같은 방향 동행인을 픽업해서 비용을 나누는 시스템이다. 길 중간에 멈춰서 여학생 두 명을 픽업했다.  그들은 뒷좌석 문을 열고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나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하던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J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걔 아직 집 못 구해서 아직까지 친구 집 돌아다니면서 자고 있대”

 

J라는 친구가 학교가 개강한지 벌써 2-3주가 지났는데 아직도 숙소를 못 구해서 친구네 집을 전전하며 수업에 나간다는 소식이었다. 더불어 나는 평범해 보이는 이 학생들이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셰어하우스로 돌아가는 스탠퍼드 대학생들이란 것을 배웠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군. ‘그것 참 안됐다’ 하고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집세 대란에 여행자인 나도, 대학생인 이들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려고 우버 셰어를 타고 에어비앤비를 예약한 건데 생각해 보니 우습게도 물가 급등을 초래한 장본인*이 우리를 몸소 샌프란시스코 외곽으로 실어다 주는 중이었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이 샌프란시스코에 베이스를 둔 스타트업들의 성장과 함께 사람이 몰리며 샌프란시스코는 살기 비싼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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