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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Sep 19. 2019

향수2


 가끔 주말에 운동을 마치고 풀 냄새가 사라진 ‘순수 땀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오면 곧장 마당으로 향한다. 

전편(향수)에 밝혔듯 딸은 참 좋아하지만 아내는 썩 좋아하지 않는 나의 ‘순수 땀 냄새’ 때문이다. 


 그래서 텃밭과 나무에 퇴비를 주고, 잡초도 뽑고, 울타리 밑에 낀 이끼도 열심히 제거한다. 10평 남짓의 작은 정원이지만, 그곳은 언제라도 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 손톱에 검정 흙이 끼고, 허리는 아프지만, 

마당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언제부터인가 ‘킬링 타임(killing time)’이 아니라 ‘힐링 타임(healing time)’으로 다가온다. 


우리집 정원이면 좋겠지만, 얼마 전에 갔던 서울 문화비축기지 잔디밭 / 출근길에 갑자기 설레게 만든 옆집 창가의 꽃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에 머물면 일반적으로 즐거운 건 눈이다. 초록은 편안하고, 울긋불긋한 꽃을 보면 설렌다. 눈은 진보적이라 새로운 것에 끌린다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때로는 햇빛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꽃과 나무, 풀의 모습은 한결같지만 새롭다. 매력적인 감정은 향에서도 온다. 향긋한 꽃내음과 싱그러운 풀 향이 기본이라면 덤은 흙냄새가 아닐까 싶다. 마치 잘 블렌딩된 질 좋은 와인처럼 꽃과 풀, 과일과 초콜릿 향이 어지럽게 섞인 게 바로 흙냄새다. 


 내 땀 냄새를 유독 좋아하는 딸이 마당에서 힐링(healing)하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아빠, 흙냄새 정말 좋다”

교과서처럼 알차고 균형잡힌 와인. 우리집 정원 흙냄새 만큼 향이 좋다

 흙냄새 때문에 딸과 마음이 닿았다. 


 흙과 내 땀을 섞으면 딸이 참 좋아하는 향수가 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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