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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gram Mar 08. 2020

머뭇거리다 놓친 후에

이제는 도전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퇴근 후 집에 가는 길, 잠들 기 전의 주말 저녁마다 드는 생각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도 어느 시점을 지나면 하나같이 월요병을 달고 사는 걸 보면 이건 회사라는 구조적 문제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끊임 없이 내가 원하는 걸 탐구하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면 그 다음으로 나아가려하는 속성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자아성찰에 민감한 편이다. 누군가 내게 장점을 묻는다면 '자아성찰력이 높다'고 먄할 정도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점점 더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점점 더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은 사실 알고보면 어디서나 발에 채이는 매우 평범한 돌멩이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십 수년만에 문득 깨달은 건, 어디선가 본 저 글귀가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실수에서 늘 교훈을 얻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나 보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실수는 바로 목표를 눈 앞에 두고 결정적인 순간에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목표지향적이고,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으로 경쟁의식이 강한 내가 포기라니! 하지만 지나간 삶의 역사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성취 지향이라 굳게 믿었던 나는 분명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쯤되면 자아성찰을 어딘가 잘못해온건 아닐까 싶기도 하나, 이건 나도 모르던 나의 무의식 속 자아였다는 변명을 덧붙여본다.


전속력을 향해 달리다가도 목적지 부근에서 급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방향을 향해 발길을 돌리는 게 나였다.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실패할 기회를 만들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이던 것 같다. 내가 선택의 기로에서 늘 달아나기만 건, 일종의 자기 방어였다. 진정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내가 느낄 자괴감, 실패했을 때 한 없이 낮아질 자존감,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을 미리 예측하여 난 스스로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크게 성공할 일도 없지만, 크게 실패하거나 상처받을 일도 없는 것이니까.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나의 잠재의식 속 보호 본능이 내게 다가올 미래를 판단하여 예상되는 문제들을 사전에 차단시켰다.


나는 한 때 기자를 꿈꿨다. 꽤 열심히 준비했었다. 스터디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몇 달 동안 열심히 했었다. 가장 가고 싶은 언론사의 필기 시험을 통과하였고 처음으로 취재면접이란 것도 진행해봤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진행되는 면접의 둘째 날,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면접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그 시각, 나는 다른 일반 기업의 면접장에 있었다.


이것은 내 일생일대의 모순적 선택이었다. 그저 열망이 거기까지였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난 분명히 난 기자가 되고 싶었다. 기자들이 출간한 책들을 끼고 살았고, 학부 중간/기말고사 전날까지 굳이 논술 첨삭을 받던 나였다. 근데 어째서 이렇게 쉽게 발을 빼고 다른 면접장에 가 있 것일까?

아직도 그 날 명동에 나가 취재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참 짧고도 긴 하루였다. 치열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해가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듯, 간절해 질수록 두려움도 커던 걸까.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나는 또 반년 넘게 취업준비를 해야할 것이고, 더 이상 불안정한 삶을 지속하고 싶지도 않다. 괜히 공백기가 생기면 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이번에만 운 좋게 논술 작문이 내가 잘 아는 분야가 나온게 아닐까? 입사 가능성은 기업쪽이 더 유리할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곳에 지원해야하지 않을까?
기자는 술도 많이 먹고, 밤샘도 많이 한다는데 스터디원 친구들에 비해 기자정신이 부족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내린 판단결국 포기였다. 나는 내가 한 때 진정으로 갈망하던 내 꿈을 제 발로 떠나버렸다. 그 후 나는 대안으로 선택한 회사가 아닌, 다른 일반 회사에 입사하여 4년 째 다니고 있다. 이제는 기자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고, 그 후로 나는 내가 기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미련도 없었다. 다만, '언론'이라는 꿈이 사라진 자리에 무언가 다른 것으로 메꾸어져야 했고, 그것은 '데이터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주제였다.




언제쯤이면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학부시절 가장 좋아했고 즐거웠던, 또 나의 성과 또한 괜찮았던 게 마케팅 수업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CRM등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을 배워보고자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부서 배치 시 신입사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회사임에도 나는 마케팅이 아닌 경영관리 업무를 '스스로' 선택했다. 인간의 실수, 아니 나의 실수는 머지 않아 그대로 되풀이 된 것이다. 이 당시에도 난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또 다른 구구절절한 이유들로 내 선택을 합리화 했다.


그 후 숱한 고난의 시간들을 겪어야 했다. 어떤 일이든 찾아오는 시련이지만 난 그것을 견뎌낼 힘이 약했다. 견디고 버텨야할만큼 이 일에 대한 애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로 고민은 학생때보다 더 심해졌고,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부서이동에 성공했다. 옮긴지 어언 1년이 되었고, All is well은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신입사원때 조금만 나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부서 배치는 1순위 지망이 떨어지면, 비인기부서로 배정될 가능성이 큰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인기부서였던 마케팅본부에 지웠했다가 괜히 옆에 있는 친구한테 밀려 비인기부서로 갈까봐 겁을 먹었. 나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준 팀에 지원하여 중간이라도 하자는 나름의 low risk low return 전략이었다. (굳이 또 이걸 high return일 것이라 애써 생각 나다. 추했구나..!) 


8할의 두려움보다 2할의 간절함


사실 그냥저냥 살만할 때는 지난 선택에 후회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내 현실이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다. 나의 인내심 임계치를 갱신하며 때론 하기 싫고 재미 없는 일들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 꼭 버텨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나마 남은 힘을 쥐어 짤텐데, 그게 아니라면 쫌 힘들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면, 합리적인 대처방식보다는 꼭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때 진정 원했던 일에 당당히 도전하지 못했던 것의 댓가라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자각하긴 했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명제에서 자유로워 진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꿈들과 맞서 용맹하게 맞서 싸우며(?) 현실에 적응하라고 스스로를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지로 쌓은 마음의 뚝은 인생의 큰 비가 오면 쉽게 무너져 내린다는 걸 몸소 느낀바 있다. 안전한 타협은 그만큼의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댓가는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다.


아무리 백세인생이라고 하고, 몇 년 경력 쌓은게 없는 나이여도 지금 내가 가지고 경험한게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의 전부다. 갑자기 이제부터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에 올인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올바른 판단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노력해보고 싶다. 30대가 되니, 더 이상 도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초조함도 들고, 이제는 머뭇거리는 나로부터 쫌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또 다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8할의 두려움에 대신 2할의 간절함을 믿고 돌파해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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