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른 주 과장은 붉어진 얼굴로도 취하지 않았는지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리 대리는 슬슬 내일 출근이 생각나 꺾어 마시기 시작했다.
"반장은 다치지 않은 거야?"
"유치장까진 들어갔긴 한데 그 이후엔 특별한 일은 없었나 봐.과거 개성공단 철수 사건이 있기도 했고, 즉각 본부장을 경질했지. 근데 거기 모였던 작업자들은 아오지로 보내졌다고 하더라.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인데 딱하지."
잘못은 본부장이 해놓고 왜 애꿎은 사람만 탓할까?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남조선 정부 놈의 반응이 웃겼어."
주 과장은 새 소주의 뚜껑을 따서 리 대리에게 따라 주려다가 반쯤 남은 잔을 보고 자기 잔에 따랐다.
"그쪽 정부에서 크게 문제 삼을까 봐 위에선 대응책을 마련하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어. 근데 아무런 소식이 없더군. 워낙 큰 건이라 다음 날에 바로 뭔가 나올 줄 알았거든. 그러는 사이에 블라인드? 남한의 직장인 커뮤니티에 먼저 퍼지고, 언론사에선 그거 보고 1면으로 터뜨려서 전 국민이 알게 됐지. 그동안에 남한 정부의 외교부랑 통일부가 서로 지들 책임 아니라고 싸우고 있었고."
리 대리와 주 과장은 낄낄 거리며 잔을 부딪혔다.
"당에서도 회사 왔다 갔고 우리 사업장 어떻게 되나 나도 똥줄 좀 탔지. 근데 이 와중에 갑자기 저 쪽 야당 의원이 이상한 발언을 했잖아. '노조가 제 버릇 못 버리고 개성공단까지 가서 행패를 부린다.' 띵하더라!"
"그 뉴스는 나도 봤어. 그거 보고 나도 남한 노조가 잘 못한 줄 알았는데."
"나야, 현장에서 거드름 피우는 거 보기 싫지. 근데 남한 놈한테 총 겨누는 건 다른 얘기니까."
리 대리는 막잔을 비웠다. 그 후 당에서는 잘됐구나 하고 이 사건의 책임을 현대자동차 노조 쪽으로 돌렸다. 남한은 뒤집혔다. 국민은 야당 의원 보고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비난했고, 현대자동차 노조는 남한 내 모든 공장에서 파업에 돌입했다. 야당에서는 서둘러 사과하며 당 차원의 발언은 아니라고 둘러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통일부는 국제법이 관련된 건 외교부가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질책했고, 외교부는 이런 일도 맡지 않으면 통일부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고 반박했다. 후에 알게 됐지만, 이런 사태에 남한 정부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경제 협력을 체결하고 눈에 보이는 공장 세우기에만 급급했지 유사시를 위한 매뉴얼이나 합의서를 전혀 만들어 놓지 않았다. 이후 야당은 대응이 미흡하다고 무능한 정부를 비판했고 여당은 전 정부의 작품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그 사이에 전 반장은 귀국했다. 현대자동차가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당과 접촉하면서 딜을 했다는 후문이다.소동이 정리될 쯤에 이 사건을 야당은 'ㅇㅇㅇ정부 국민 구출 포기 사건'이라고 언론에 입장을 밝혔고, 여당은 '개성공단 현대자동차 공장 내부 마찰'이라고 건조하게 명명했다. 북한은 '남조선 불한당 패거리의 반동 수작질'로 불렀다.
"근데 저쪽 야당 의원이 자기 나라 노동자를 왜 비판했을까?"
"대기업 녹을 먹는 노동자인데 파업을 벌이고 눈에 가시 같아 보이겠지. 남한에서는 처우가 열악한 작은 기업보단 대기업에서 파업이 더 벌어지니까 눈에 띌 거야."
"그렇게 많이 벌어?"
"전 반장은 시계가 롤렉스더라. 한국에서는 귀족노조라는 얘기를 듣는대. 근데 그렇게 욕 하면서도 채용공고 뜨면 수십 만 명이 지원하고. 저번에 경쟁률이 500:1이라고 하더라."
욕 하면서도 기회만 되면 차지하려는 심보는 뭘까. 리 대리는 남한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롤렉스 하니까 갑자기 롤렉스를 찬 박 대리가 생각났다. 금수저 정도 돼야 가지는 롤렉스를 저기서는 노동자도 가질 수 있는 걸까. 이 참에 우리 박 대리 소식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