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남긴 육아일기
4년 만에 첫 아이를 만났습니다.
오래도록 기도하고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행여나 그 아이를 잃게 될까 말도 행동도 조심하던 우리 모녀는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들면서는
마음껏 행복해하며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함께 아기 이불을 만들고, 아기 인형을 만들며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자랑하듯 내민 배를 하고 엄마의 집으로 가면 늘 따듯한 음식과 배려로 공주처럼 대해주던 엄마였습니다.
가끔 옆에서 무거운 배를 옆으로 하고 잠든 딸의 다리에 발을 올리고 주무시긴 했지만
엄마의 고단함을 알았기에 웃어넘기며 조용히 다리를 내려드렸지요.
엄마는 저의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작은 노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초보 엄마는 수유 일기 쓰느라 바빴지만 외할머니는 아이를 기다리던 순간부터 아이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으셨나 봅니다.
그렇게 시작된 친정엄마의 육아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첫 페이지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글씨와 감정은 엄마가 저의 성장앨범 첫 페이지에 써놓은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손주의 일기를 쓰며 첫 아이를 키우던 기억을 더듬어 보셨는지도 모릅니다.
시집올 때도 가지고 온 낡은 앨범 속 엄마의 글귀 하나하나가 너무 좋았습니다.
앨범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사랑받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앤티크 한 앨범이 제게 가져다준 엄마의 흔적처럼 할머니의 기록이 훗날 우리 아이에게도 따듯한 보물이 되어 주겠죠? 그래서 저는 외할머니가 얼마나 우리 아이를 기다리고 기도하며 사랑으로 돌보셨는지 남겨두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제 앨범을 열어 내지에 써주신 엄마의 메시지는 자라는 동안 두고두고 저의 에너지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종종 아이에게 작은 편지를 남기곤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전해주는 의미와 사랑의 힘을 알고 있거든요.
이만큼 자라 아이를 키우고 보니... 나보다 어렸던 엄마는 어디서 그런 사랑의 힘이 나와 어린 자녀들을 키우셨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려고 애쓰셨던 건 이 기록처럼 삶의 곳곳에서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다시 돌아온 외할머니의 육아일기!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위가 사드린 50색 색연필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기뻐하셨던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사위가 사드린 색연필로 이렇게 그림일기를 그릴 날을 고대하셨는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2014년 어느 여름날!
엄마는 제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릴 때면 자주 말씀하셨어요.
"엄마는 너 아기 낳으러 갈 때 같이 안 갈 거야."
"왜? 나 엄마 없이 어떻게 아기 낳으러가?"
"으이그~ 너 이렇게 엄살떠는 거도 보기 힘든데...... 너 아기 낳는 거는 어떻게 보니?"
이런 말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시집가기 전에도 엄살만 부리면 자주 하셨는데...
그 말이 진짜 씨가 되었어요.
토요일 밤에 찾아온 진통은 일요일 새벽이 되어 아이를 만나고야 멈췄습니다.
오롯이 신랑과 저만의 분만 시간이 지나고, 밤새 뜬 눈으로 기다리다 주일 첫 예배를 드리고 총알같이
날아오셨던 친정부모님은 모든 것이 신기해서 그저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것이 친정엄마와 소중이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수유하는 것도 서툴러서 어떻게 젖을 물리는지도 모르고 어깨와 팔에 잔뜩 힘을 주고 아이와 낑낑대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딸을 바라보던 엄마는 삼십 년도 더 된 기억을 떠올리시며 팔 아래로 쿠션을 받쳐주시고, 발아래 발판을 놓아주시며 어떻게든 아이가 젖을 잘 빨면서도 딸이 힘들지 않을 자세를 찾아주셨습니다.
"그래! 이제야 조금 애가 먹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그렇게 겨우 초유를 먹이고 아이를 안아 들어 올리려는데 목을 제대로 받치지 않았던 초보 엄마의 미숙함으로 갓난아이의 목은 낙엽처럼 아래로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 상황에 스스로도 놀라 엄마를 쳐다보며 눈물을 또르르 흘렸습니다.
이 유리 같은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나갈지...... 부서질 듯 가냘픈 아이가 몹시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엄마~ 나 엄마 없이 소중이 어떻게 키워?"
"다 그러면서 키우는 거야~"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라는 시간을 마치고 엄마는 딸네 집으로 오셨습니다.
조리원에서부터 아이를 안고 오신 건 제가 아니라 친정엄마였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순간마저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무서웠거든요.
그렇게 엄마가 함께 해준 한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수유도 조금 익숙해졌고, 조심스레 목욕을 시키는 방법도 엄마와 함께하며 많이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와의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딸이 출산휴가를 마치기 전, 아이가 잠을 자는 패턴과 엄마가 없는 시간에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씩 시간을 늘리며 엄마의 부재를 연습해 갔습니다.
엄마와 딸의 환상의 콜라보 육아를 하시려 갖가지 장비를 가지고 오신 엄마.
그렇게 엄마와 함께한 첫아이의 육아는 2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때가 지난 인생 중 가장 사무치게 그립고 행복했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