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에 디자이너 A씨가 디자인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A씨는 자기 취향대로 디자인을 합니다. 그래서 팀장이나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가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A씨는 자기 취향을 굽히지 않습니다. A씨가 디자인한 제품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은 A씨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A씨는 회사를 자아실현, 즉 자기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A씨는 그 때문에 승진도 늦고, 보너스도 적게 받고, 상사에게 찍혔을 수 있지만, 상관 없습니다. A씨는 어쨌든 직장에 다니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고, 그 목적에 맞게 충분히 회사를 활용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경제적 보상 관점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이 회사 기획실에는 B씨가 일하고 있습니다. B씨는 사내 정치에 올인 중입니다. 윗사람에게 어떻게든 잘보이기 위해 간과 쓸개 다 빼놓고 늘 입에 사탕발림을 하고, 아랫사람들 중 자기 편만을 쏙쏙 골라내서 파벌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라인을 잘 타서 빠르게 승진하고 최대한 오래 회사에 남는 것이 B씨의 최종 목표입니다. B씨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B씨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B씨에게 그건 회사의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지만, 그 말 역시 B씨는 신경 안씁니다. B씨가 회사를 다니는 목적은 회사 발전도 전혀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회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는 것이 B씨가 회사에서 오랫동안 다니면서 최대한 돈을 버는 데에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A씨와 B씨 모두 뚜렷한 목적을 갖고 직장을 다닙니다. 회사가 A와 B씨에 의해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논외로 하고, 어쨌거나 A와 B 모두 직장에 만족합니다. 그 이유는 둘 다 직장을 뚜렷한 목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일 일도 없고, 자신이 목적한 바 외의 다른 것을 욕심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A씨는 직장을 이용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그렇게 하고 있고, 그로 인한 현실적 보상의 피해는 감수하고 있습니다. B씨는 남들에게 비난을 감수하면서, 회사 발전에 별 도움도 주지도 않지만 최대한 오래 다니겠다는 스스로의 목적에 맞게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목적에 딱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거나 불만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A와 B를 석연치 않은 눈으로 보는 C씨가 있습니다. C씨는 개발 팀장으로서, A가 회사가 아닌 자신을 위해 회사 자원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B씨가 회사의 장기적 발전보다 자기 안위를 위해서만 회사를 이용한다고 생각합니다. C씨는 불만이 많습니다. 늘 열심히 회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하지만 회사는 별로 자기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A와 B같은 사람과 자기가 큰 차이 없는 대우를 받는다는 데에 매우 불만이 많습니다.
C씨는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다면, 직원 성과 보상 시스템이 잘 갖춰진 직장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현재 자신이 다니는 곳이 그런 곳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바로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니까요. 지금 회사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강한 목적이 있다면, 인정을 받든 보상이 어떻든 눈엣가시같은 직원이 있든 말든 진정으로 회사 발전을 시키는 목적 의식을 갖고 일하면 됩니다. 자신이 품은 목적과 자신이 행하는 행동을 회사가 보상해주고 인정해줘야 할 그 어떤 당위성도 없습니다. 그건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구요.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불만을 갖고 직장 생활을 힘들어하는 이유엔, 직장을 다니는 뚜렷한 목적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여러가지 목적을 한 번에 이루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하고 싶은 업무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정도 받고 성과도 많이 받겠다는 목적을 갖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목적은 결코 그 어떤 뚜렷한 목적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가지 목적은 늘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많고, 따라서 단 하나의 뚜렷한 목적을 설정하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목적을 갖는 것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뚜렷한 목적인 하나밖에 될 수 없는 이유는 매 순간 판단과 선택을 할 때 흔들리지 않는 기준 하나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죠. 두 가지 목적을 갖는 순간 언젠가는 그 두 목적 중 하나를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판단과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직장을 다닌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직장에서 편한 일, 좋아하는 일, 맘에 드는 사람들과 일하지 못하게 될 경우 불만과 고민을 차곡차곡 자기 내부에 쌓아 갑니다. 실은 그 누구도 돈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정말로 돈 버는 것이 가장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를 수 있습니다. 남이 하기 싫은 불편한 일, 싫어하고 꺼리는 일,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하는 일들에 보통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고 그 일을 해내는 쪽으로 커리어를 쌓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외의 다른 여러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직장에 다닙니다. 번듯한 이름을 가진,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목적으로 직장을 다니죠. 당연히 그런 목적은 어느 순간 좌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혹 그 모든 목적을 다 이루는 직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느 정도 운에 불과합니다. 자기 사업체를 차리는 사람도 그런 직장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직장은 우선적으로 돈을 버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포기되는 가치들이 많기 때문이죠.
다만 뚜렷한 목적을 가지면 그 때부터 직장이 달리 보입니다.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거나, 편안하게 만족스럽게 일한다는 등등의 목적을 가지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가 보이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우선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은 경제적 보상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보상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가치들에 대한 경쟁을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죠. 경제적 보상을 진심으로 포기한 사람들이 다른 가치들을 누리며 직장에 다닌다면 그 누구도 건드리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한 사람은 무적이 될 수밖에 없죠. 또라이나 다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