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맘대로 May 06. 2024

면덕후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분 중 면요리를 참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 점심때 주로 직원분들끼리 식사를 주문해 먹는데, 볼 때마다 이 분은 라면을 비롯해 중국집 면요리, 냉면, 쌀국수 등 종류별 면요리를 섭렵하고 계신다. 야간 근무를 하는 날에도 저녁에는 어김없이 이 분 앞에 면요리가 놓여 있는데, 이 분 덕분에 새로운 신상 라면 정보를 알게 되어 집에 갈 때 편의점에 들러 야식으로 먹을 신상 라면을 구입할 때도 있었다. 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셔서 주변에선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언을 주기도 하지만, 원체 말이 없는 이 분은 빙긋 웃을 뿐, 여전히 그 날도 앞에 놓인 면요리를 향해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뜯으신다. 


주변에 이 분처럼 면덕후들이 좀 있다. 친구 중에도 면덕후를 자처하며 면요리 맛집을 찾아다니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면요리 식당 정보를 주로 페이스북 '동아시아 면류학회' 클럽에서 얻는다. 이 친구와 외식을 할 때 종종 새로운 일본 라멘집을 찾아다니곤 한다. 덕분에 나도 우리나라 곳곳의 맛있는 일본 라멘집들 요리들을 가끔 맛보게 된다. 


나는 면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유독 좋아하는 면요리가 있으니, 바로 '모밀소바' 요리다. 집에서 가끔 모밀 소바 요리를 해먹는데, 한 번 먹으면 보통 2인분 분량을 먹어 치운다. 소바집에 가면 간에 기별도 안갈만큼 작은 면 분량에 소스도 조금만 주는데, 집에서 먹을 땐 소바면을 쌓아놓고 먹는 기분이 들어 매우 만족스럽다. 게다가 소스도 한 두 차례 면을 담가 먹은 후엔 바로바로 교체해 먹는다. 어째 밖에서 사먹을 때보다 돈이 더 드는 것 같다.


그동안 일본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갈 때마다 각 도시마다 이름 좀 있는 모밀 소바집을 다닌다. 기억나는 주요 소바집을 꼽자면 홋카이도 오타루의 야부한 소바, 도쿄의 간다 마츠야 소바와 타마와라이 소바, 교토 마츠바 소바, 나라 긴쇼 타카하타 소바, 후쿠오카 신슈소바 무라타가 생각난다. 그 외 길가다 눈에 띄어 들어가 먹은, 기억 안나는 소바집도 꽤 많다. 도쿄에서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소바면 반죽해 삶아 만드는 쿠킹 클래스도 들었다. 모밀 소바에 대한 나의 열정은 그야말로 진심이다. 태국 방콕도 갈 때마다 미츠모리를 비롯해 다양한 일식집에서 소바를 찾아 먹곤 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오랫동안 기억나는 곳은 하라주쿠에 위치한 타마와라이 소바다. 평소 식사 시간에 맛보려면 1시간 이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때마침 잠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30분만 기다린 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웨이팅 룸에 내가 들어가자마자 뒤로 손님들이 줄줄이 늘어선 걸 보면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타마와라이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소바집이라는데, 명성에 비해 구글 평점은 낮다. 아마 가격 대비 양이 적거나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린 보람에 비해 대단치 않다는 느낌을 받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소바 면덕후인 내게는, 타마와라이 소바가 왜 미슐랭 스타를 받았는지 확 느껴졌다. 면을 음미하듯 조심스레 입안에 넣고 굴리듯 씹고 있으면, 그 속에서 다양한 향이 혀에 녹듯 느껴진다. 왜 그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면을 씹자마자 금가루를 씹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쯔유 역시 다채로운 향과 맛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한 차이라, 나처럼 소바 덕후만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하기까지 했다. 


면요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밀 재배가 기원전 7천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기원전 5천년 전에 밀이 전해졌는데,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그 즈음 언젠가 면요리가 중앙아시아에서 개발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찰기가 있어 길게 늘어뜨릴 수 있는 밀의 특성상 면요리를 생각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어느 지방에 밀이 처음 전해졌어도 바로 면요리가 개발될 수 있었다고 본다.


밀로 만든 면요리와 함께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면요리 중 하나로 베트남 쌀국수가 있다. 그런데 알고보면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전래도 중국 국경 지방의 쇠고기 쌀국수가 전해졌다는 설과 프랑스 식민 통치 시절에 프랑스의 포토푀 요리에 의해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고 하니, 베트남이 쌀국수의 종주국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를 먹지 않는다. 뭐 다들 베트남 쌀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글쎄 내 입맛엔 한국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가 훨씬 맛있더라. 고기 질도 그렇고 숙주를 비롯한 야채도 그렇고. 


요즘 건강을 생각한다고 라면이나 국수 요리 대신 두부면이나 곤약면으로 만든 유사 라면이나 비빔면등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그 맛에 대해선 아직까지 좋은 평가를 그닥 받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인간이 쾌속 진화를 거치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건강'과 '맛'은 서로 음의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듯 하다. 


라면과 국수 말고도 우동, 파스타면 등등 생각해보면 면요리는 참 다양하다. 요즘은 우육면을 비롯해 대만이나 홍콩식 면요리 식당도 슬슬 많아지고 있다. 먹고 싶은 면요리는 점점 늘어나는데, 나이 들수록 점점 밀가루 소화능력은 떨어지니 참 아쉬울 따름이다. 누군가 몸에 밥 정도의 부담을 주면서 식감은 밀가루 면 그대로인 면을 개발하면 정말 초대박이 날텐데. 식품 과학이 그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으려나. 

작가의 이전글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