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일기장
반성해보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다.
81. 06, 21
오늘 반성해 보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다.
아니 오늘뿐이 아니다.
3학년이 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래 ⅓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아니 멀리 말고 가까이라도 생각해 보자.
6월의 계획조차도 제대로 지켰던가?
하나도 그렇지가 못하다. 제대로 지켰던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노는데 나의 안이와 쾌락을 찾는데
더욱 열심히 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6개월이 60년을 결정한다. 학교복도에 써 붙여있는 말이다. 좋다. 참 좋은 말이다.
멋있는 말이다. 올바른 말이다.
6개월이 아닌 60년을 위하여 오늘을 좀 더 열심히 살자.
그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모두
잊어버려야겠다. 아니 결단코 잊어라.
....
남편의 고3 때 일기,
나름 잘해보려는 의지가 담긴 고3 때의 일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을 모두 잊겠다고
결단코 잊겠다는 결심이 귀엽다.
남편은 이 일기장이 있는 줄도 모른다.
이렇게 마눌께서 여기 공개하는 줄 알면 뭐라고 하려나...
화내려나... 그냥 웃겠지.
남편은 일기장에 자신은 사귀는 사람에게 싫증을 빨리 느낀다고 써 놓았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자신은 더욱 그렇다고
단점이 보이면 싫어진다고...
(그래서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다 보니 연애편지들이 쌓였구나)
그런 사람이 결혼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딸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딸 이쁘다, 그런데 엄마가 더 이뻐. 엄마는 못 따라가지”
그러고는
“우리 딸은 결혼하지 마, 해봐야 아빠 같은 사람 만난다.” 한다.
딸내미는 “아빠는 너무 객관화가 잘 돼서 좋다” 한다.
TV에 나와 아직도 자신이 왕이라나 뭐라나 큰소리치는
요리연구가의 남편을 보고 있자니
그에 비하면 울 남편은 얼마나 겸손하고 소박한가.
「남에게 비난받을 것은 하지 말자. 말을 적게 하자.
이제는 차분한 내 모습으로 돌아오자.
그리고 지금까지 실망을 안겨줬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나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자.
가끔은 바른 마음으로 여학생의 뒤도 쫓아보고 그에 대해서 반성도 해보자.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수고하시는 아버지, 엄마에게도 충실해보자. 잘해드리자.
계획된 시간에 살아보자...... 81. 01. 19. 金.」
바른 마음으로 여학생을 쫓는 것은 어떤 마음임? 근데 왜 반성을 함? ㅋㅋ
아무튼 나름 열심히 살려고 방황하고 분투한 남편의 열아홉 살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