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 (Bilingualism)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의 입지가 계속 높아짐에 따라, 모국어와 영어, 최소 2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화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중언어화자들이 언어를 어떻게 습득하고, 두 언어를 처리하고 구사할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중입니다.
이중언어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중언어(Bilingualism)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야 합니다. 이중언어 현상을 판별하는 데에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지만, 학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정의는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Grosjean, 2008). 이때 두 가지 이상의 언어는 보통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편이며, 대부분의 이중언어 구사자들은 두 언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숙련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언어구사자의 종류 (Types and Factors of Bilingualism)
먼저 이중언어구사자는 다양한 분류기준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학습 시기에 따라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어에서는 학습 시기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연구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분류 방식 중 하나입니다. 결정적 시기 가설 (Critical Period Hypothesis)는 언어 습득이 12-14세 정도 이전에 이루어졌을 때 원어민의 유창성 수준에 도달하기가 쉬우며,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에 비해 언어 습득과 학습에 있어서 명백한 이점(advantage)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2차 성징 이전에 언어를 배운 경우 early bilingual, 그 이후나 성인이 되어 학습한 경우 late bilingual로 분류합니다.
두 번째로, 두 언어의 구사력의 차이에 따라 분류할 수 있습니다. 두 언어를 비슷한 시기부터 습득하여 비슷한 유창성을 지닌 경우에는 balanced bilingual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보다 훨씬 편안하게 구사하는 경우에는 dominant bilingual로 분류합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대부분의 이중언어구사자는 모국어 실력이 월등한dominant bilingual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로, 두 언어를 함께 배웠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두 언어를 거의 동시에 습득한 경우 (예를 들어, 한국어를 집에서 사용하고 영어를 학교에서 사용한 경우) 에는 simultaneous bilingual로, 한 언어를 습득한 후 다른 언어를 학습한 경우에는 sequential/successive bilingual로 분류됩니다.
이외에도 학습 방법이나 환경, 두 언어 사용 비율 등 다양한 요인들이 이중언어 화자의 언어 구사력과 처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중언어 화자들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요인들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이중언어에 관한 연구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중언어 이해와 발화 모델 (Models of language comprehension and production)
이중언어 화자들이 언어를 처리하고 발화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모델에 대한 제안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언어 이해 (language comprehension)과 언어 발화 (language production)에 관한 대표적 모델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중언어 이해에 관련해서는 Bilingual Interactive Activation Plus Model (BIA+) 이 대표적인 모형 중 하나입니다. 이 모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하위시스템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단어를 인식하고 문장을 처리하는 언어 처리 시스템과, 과제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과제/결정 시스템으로 나뉘는데요, 언어 처리는 철저히 자극을 바탕으로 bottom-up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여러 언어의 단어나 음운 정보들이 구분 없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자극을 들었을 때 모든 언어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어를 접하는 순간, 그 단어의 철자 정보가 가장 먼저 인식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단어의 음운 정보와 의미정보 등이 활성화됩니다. 또한 단어마다 다른 resting potential 값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데, 이는 단어의 빈도에 따라 정해집니다. Resting potential이 높을수록 더 작은 자극만 전해져도 활성화가 되어서 단어에 접근하기 쉬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모국어의 단어들이 빨리 활성화되고, 외국어의 경우 시간적인 지체가 생기는 것이죠. 따라서 이 모델은 외국어의 유창성 (proficiency)에 단어 활성화 유무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다양한 뇌영상기술을 이용한 연구들로 인한 뒷받침이 되고 있는 가설이기 때문에, 이중언어 사용에 있어서 눈여겨볼 만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중언어 발화에 관해서는, 최근에는 이중언어 발화도 단일언어 발화와 큰 차이가 없는 모델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처리가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가설은, 외국어 처리는 모국어에 비해서 불완전하고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많은 연구들이 발화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두 언어 활성화가 비슷하게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 발화에 대한 계획은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먼저, 말하고 싶은 단어나 개념선택이 언어 선택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라는 개념을 떠올렸다면 “포유류,” “짖음,” “털이 많음”과 같이 그 개념과 관련된 특징(feature)들도 함께 활성화됩니다. 그러면 그 특징들을 갖고 있는 단어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늑대,” “강아지,” “사자” 등 다양한 동물들 중 한국어 단어인 “강아지”가 선택되면, 품사정보나 수일치 등 단어의 형태론적/통사론적 정보도 함께 정해지게 됩니다. 그 이후 문장 구조가 선택이 되면, 마지막으로 문장을 실제로 입밖으로 꺼내기 위한 음운론적 계획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모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양한 개념들이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활성화되고, 다양한 층위에서 활성화를 동시에 받는 node는 더 강하게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중언어 사용의 이점 (The Bilingual Advantage)
두 언어 이상을 사용하는 것이 인지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 왔지만, 과연 이중언어 이점(Bilingual Advantage)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존재합니다.
이중언어 사용이 치매 등의 신경질환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존재하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다양한 인지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인지능력 퇴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기존의 이론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중언어 사용이 집행능력 (executive function), 즉 주의력이나 작업기억, 멀티태스킹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관련 주제에 관한 연구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이중언어 사용시 인지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이중언어 화자의 환경적 다양성 통제 부족, 주어진 과제의 차이, 개인차 등으로 인한 영향을 배제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해선 추후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문헌
[1] Blanco-Elorrieta, E., & Caramazza, A. (2021). A common selection mechanism at each linguistic level in bilingual and monolingual language production. Cognition, 213, 104625.
[2] Grosjean, F. (2008). Studying bilinguals. Oxford, England: Oxford University Press.
[3] Konnikova, M. (2015, Jan 22). Is Bilingualism really an advantage?.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science/maria-konnikova/bilingual-advantage-aging-brain
[4] Van den Noort, M., Struys, E., Bosch, P., Jaswetz, L., Perriard, B., Yeo, S., ... & Lim, S. (2019). Does the bilingual advantage in cognitive control exist and if so, what are its modulating factors? A systematic review. Behavioral Sciences, 9(3), 27.
[5] van Heuven, W. J., & Dijkstra, T. (2010). Language comprehension in the bilingual brain: fMRI and ERP support for psycholinguistic models. Brain research reviews, 64(1), 10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