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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Dec 26. 2023

장관님 저 전세사기 당했어요

 4월 3일 월요일 오후 4시 30분. 국토부 장관이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강연차 인하대를 찾았다.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지 3일만에 일이었다. 정치에 관심 없는 동생은 몇주 전부터 걸려있던 국토부장관 강연 플랜 카드엔 관심이 없었다. 마침 그 시간엔 수업도 있었다. 정치 따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와닿지 않는 대학생 동생이 원희룡 장관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고교시절 수없이 들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가 전부였다. 하지만 전세사기를 당한 후, 동생은 이는 다신 없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업 중간에 빠져나와 곧장 강연장으로 향했다.


 150명의 학생이 가득찬 강연장에 뒤늦게 도착한 동생은 기어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침 강연 주제가 '전세사기 예방'에서 '관리비 문제'로 넘어가려던 찰나, 동생은 "장관님! 저 전세사기 당했어요!" 하고 외쳤다. 그리고 동시에 주말 내내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전세 사기 소식을 알게 된 후, 처음 찾아온 평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 속에서 혼자만 이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너무 서러웠다고 했다. 동생을 황급히 데리고 나간 학교 선생님과 국토부 직원들은 서럽게 우는 동생을 달래주었다. 그 사이 강연을 끝낸 장관은 서글피 우는 동생을 위로했다.


 빌라 2200호를 소유한 건축왕 남모씨의 영향으로 미추홀구는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지역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인하대 근방은 잠잠했다. 간혹 경매에 넘어가는 집도 있었지만 (가구마다 집주인이 다른)다세대 주택이였기에, 주거 문제도 금전적 손해도 크게 없었다. 때문에 동생의 난동(인하대 학생도 전세사기 피해자란 것)은 국토부에서도 학교측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였다. 이를 계기로 학교 측에서도 전세사기 실태 조사에 나섰다. 동생에게 피해자 단톡방에서 인하대 학생이 몇 명인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피해자 과반수가 대학생이였기에 하루만에 (같은 집주인의) 28명의 피해자가 파악되었다.



4월 4일 화요일


 아침 9시 30분. 인하대 학생 지원팀과 3주 전 (3월 13일)에 개소된 '인천 전세사기 지원센터'에 방문했다. 대부분이 공실인 신축 건물에 홀로 개소된 지원 센터는 정부 기관보다는 다단계 사무실 같았다.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로 바쁜 직원들의 모습도 공무원보다는 다단계 직원에 가까워 보였다.


   먼저 지원안내를 받았다. 당시 정부 지원책엔 (4월 4일자로) 저리 대출과 긴금 주거지원이 있었지만, 이 중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건 없었다.


1. 전세사기피해자확인서를 받으면 시중 은행에서 1.2~2.1%의 금리로 저리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우선 피해지원을 대출로 해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다소 의아했다. '피해액을 구제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우선 급한대로 대출로라도 막아보라'는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이였다. 물론 보증금에 대출금이 포함된 피해자의 경우, 매달 내야 하는 고액의 이자를 저리 대출을 이용해서라도 막아야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대출은 없었기 때문에 저리 대출은 이용할 계획이 없었다.


2. 긴급 주거지원.

 lh에서 매입한 임대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 (30~50%)에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현재 집보다는 큰 집을 구할 수 없었다. 우리의 경우, 동생 혼자 살던 원룸에 내가 같이 살게 되면서 투룸으로 옮길 집을 알아보고 있던 찰나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경우기 때문에, 현재와 비슷한 크기의 원룸은 구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주거지원 조건도 기존 lh임대주택과 다를게 없었다. 이 또한, 원래도 보증금을 무사히 돌려받으면 lh 임대주택을 이용할 계획이였기에 피해자로서 득을 본게 없었다. 게다가 당시 lh에서 확보한 주택은 200채 정도로, 이는 피해자 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였다.


3. 매년 증가하는 최우션 변제금액

 최우선 변제금액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최우선 변제액은 근저당 설정날짜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4700만원까지 오른 변제금액에 대한 해택도 없었다. 우리의 경우 근저당 날짜는 2016년 9월로 최대금액 7000만원, 변제금액 2700만원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미추홀구는 과밀억제지역으로 인천 다른 권역에 비해 조금 더 높다는 것 (인천 다른 지역은 6000만원, 변제금액 2000만원)이였다.




 다음으로 법무사와의 법률 상담도 진행되었지만, 이 또한 포털에 조금만 검색하면 누구나 알만한  뻔한 내용이였다.


1. 민사소송 (보증금 반환소송) 은 5개월 후에야 가능하며, 승소한다 하더라도 정황상 보증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집은 이미 경매애 넘어갔지만, 법적으로는 '피해자'가 아니였다. 계약해지 통보를 한 후 3개월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 합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 겨울 방을 빼겠다고 통보 해놓고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세입자가 구해지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집주인의 말에 '그럼 다른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만 있겠다'고 해놓은 '묵시적 갱신' 상태였다. 계약해지 통보 기한이 명확하지 않고, 이조차도 문자가 아닌 전화로만 하여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내용증명'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런데 현재 잠적한 집주인은 쉬취인 불명상태로 2,3번의 내용증명을 보내고 공시송달까지 해야 법적으로 계약해지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이 거의 2달이나 걸린다. 즉, 계약해지 통보에 2달, 이 후 3개월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 합법이였기에 최소 5개월은 지나야 민사를 할 수 있었다. 민사를 하기까지만 5개월이 걸리 뿐, 민사과정도 최소 1년, 혹은 그 이상 소요된다. 무엇보다 승소한다 하더라도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소송비용 또한 평균 4,500만원으로 만만치 않다. 때문에 민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통 집주인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등기부등본에도 '국채'가 붙는다. 하지만 우리 집주인의 경우 건물 어디에도 국채에 대한 가압류는 붙지 않은 상황이였다. 은행 대출이자도 밀리고 카드사 가압류도 붙은 상황에서 집주인이 세금은 밀리지 않고 계속 내는 이유는 하나 뿐이였다. 바로 '파산신청' 국채가 밀리면 파산신청을 할 수 없다. 계획적으로 파산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건 물보듯 뻔한 일이였고, 이 마저도 10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반환의무가 사라진다.


(국세는 근저당권보다도 우선순위를 가진다. 전세 사기 이슈로 정부에서 내놓은 대응책 중 하나가 세금보다 임차인들을 우선 변제해주겠다는 것이였는데, 우리는 이 법안에 대해서도 혜택 받을 게 없었다.)


2. 형사소송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어렵다.


 그리고 거의 2시간 동안 피해지원에 대한 안내를 받고 법무사와 상담했다. 사기 사실을 알게 된지 고작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라 격양된 상태였다. 흥분된 상태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처음부터 우리를 속였습니다. 나는 너무 억울합니다' 하는 내용들이였다. 법무사는 지금 상황만 놓고 봐서는 기소조차 어렵다고 답변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집주인이 애초에 우리를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집주인이 사기를 치려고 했다는 (기망의도) 의도를 입증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게 의견이였다. 더군다나 갭투자는 사기가 아니였다. 갭투자에 실패한 건 집주인인데, 그 리스크를 왜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결론은 그랬다. 그러면서도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을 막는게 법적으로 훨씬 중요하다느니 뭐니, 법에 대한 아주 원론적인 설명을 했다. 민사소송은 소송비용과 시간만 낭비될 뿐, 현상황으로 봤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보였기에, 형사소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는게 법무사의 의견이였다. 한국에서 사기는 형량이 낮을 뿐더러, 형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징역 2,3년이 고작일거라고 답변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형사소송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어렵고, 어떻게 어떻게 잘 되어서 최선의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징역 3년이 최대라는 것. 한마디로 이건 이기기가 어려운데 이겨도 이긴게 아닌 싸움이였다.


 3시간에 걸친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니 명확하게 드는 생각은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그렇게 기세등등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사기꾼들이 뭘 믿고 피해자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나 싶었는데,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피의자'가 아니였다.


 세종시에서 달려온 국토부 직원들과 인하대 학생지원팀까지 대동하여 방문한 전세사기 지원센터에서 듣고온 답변이였기에 더욱 절망적이였다.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셨고, 이 분들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충분히 느껴지고, 이에 대해 매우 감사도 하지만, 결론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 였다.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법이 그렇기 때문에 이건 장관이 와도 대통령이 와도 할 수 없는 부분이였다. 법은 개정되는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당장 개정이 된다 하더라도 시행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려 수혜를 받기는 어렵다.


 민사도 어렵고, 형사도 안된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낮고 정부 지원책도 없고, 법적 처벌조차 어렵다.

는 말을 4시간 동안, 국토부 직원과 함께 듣고 오니, 정말 방법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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